숨바꼭질
방금 눈앞에서 칭얼대던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옳아! 숨바꼭질 하자는 것이군.' '그래 좋아 내가 녀석을 찾아내리라.'
이 방 저 방을 샅샅이 뒤져 본다. 문 뒤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문 뒤도 살펴본다. 식탁 아래 커튼 뒤 등 한참을 찾았는데도 없다. 갑자기 덜컥 겁이 난다. 언젠가 뉴스에서 숨바꼭질하던 아이가 세탁기 속에 숨고 대형 냉장고 속에 숨었다가 낭패를 본 일이 방영됐었다. 그때가 생각나서 이제 찾기를 멈추고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네가 이겼으니 나오렴. 이제 그만하자."
항복의 깃발도 통하지 않으니 이젠 회유책을 쓸 수밖에 없다. 그건 최후의 수단이다.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마트에 가야하는데 나 혼자 갈까?" 했더니 이 녀석이 장롱 속에 숨었다가 "할머니 나 여기 있어." 하면서 이불과 같이 쏟아져 나온다. 이 녀석이 장롱까지 넘보는 걸 보니 꽤 수준이 높아졌다는 생각이다.
5살짜리 손자 녀석은 걸핏하면 숨어버린다. 자신을 애타게 찾는 소리가 재미있고 존재감을 높일 수 있어 이 놀이를 즐기는 모양이다.
어릴 때 즐겨했던 숨바꼭질 놀이였는데 할머니가 되고부터는 그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세월이 거꾸로 가려는 게 아닌가? 나이 들면 어린애가 된다더니 나도 점차 어려지고 있는 걸까?
가끔씩 손자가 오면 나를 반가운 친구쯤으로 생각하는지 숨바꼭질 하자고 졸라댔다. 그러던 것이 이젠 선전포고도 없이 선제공격을 해 버린다.
이 녀석은 요구 사항이 있으면 숨바꼭질 시위를 벌여 백기를 들게 만든다. 백기든 패잔병에게 녀석은 협상을 해 온다. 나는 언제나 패자(敗者)가 되어 과자든 장난감이든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한다. 이 녀석이 능청꾸러기가 된 데는 내가 한몫했으니 원망도 못하겠다. 첫 돌을 갓 넘겼을 때부터 얼굴을 가렸다 벗었다 하면서 숨바꼭질 비슷한 걸 시도하면 두 눈이 다 감기도록 까르르 웃었다. 그게 귀여워 커튼 뒤에도 숨었다 나타나고 이불을 뒤집어쓰기도 하며 놀았던 게 탈이었다. 이래서 녀석은 나만 보면 숨바꼭질이다. 이제는 그 수준이 고수(高手)에 달하고 있다. 협상 내용도 좀 더 고가의 물건으로 변했다.
애들이 돌아가고 나면 우리 집은 또 한 번 숨바꼭질 마당이 된다. 뒤집어진 서랍을 선두로 온 집안이 난장판이다. 서랍 속에 있던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데도 한 나절이 걸린다. 도장, 손톱깎이, 가위. 볼펜, 빗, 귀이개, 과도, 손목시계 등 자질구레한 물건들과 숨바꼭질 전쟁을 벌여야한다. 그래도 덩치가 큰 것들은 쉽게 불려나오는데 작은 것들은 며칠이 걸려도 찾지 못하는 것도 있다.
어느 날은 급히 귀이개가 필요한데 그게 없으니 답답했다. 또 손톱깎이까지 나타나지 않으니 애가 탔다. 찾다가 지쳐 포기하고 컴퓨터 작업이나 하려고 자판을 두드리는데 귀이개가 그 자판기 밑에 얌전히 누워 있는 게 아닌가! 손톱깎이도 그 옆에서 뒹굴고 있었다. 한꺼번에 둘을 찾았으니 횡재한 기분이었다.
더 큰 문제는 나의 분신처럼 붙어 있어야 할 물건이 보이지 않을 때다. 나와 늘 함께하던 기억이 나와 관계가 소원해지고부터는 내 삶의 질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눈앞에 붙어 있어야 할 안경이 없을 때는 보통 낭패가 아니다. 잠깐 벗어둔 것인데 그 장소를 몰라 헤매게 된다. 안경 없이 살아야할 세상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글을 읽을 수 없으니 까막눈과 다를 바 없고, 식재료를 다듬을 때도 대충 해야 하니 그 속에 머리카락이나 티끌이 있을 수도 있다.
매일 안경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큰일이다. 어떨 때는 찬장에서 나오고 또 어떨 때는 냉장고 속에서도 나온다. 이건 손자 녀석보다 더 숨바꼭질의 고수가 아닌가!
그래도 휴대폰은 비교적 말을 잘 듣는다. 집 전화기를 들고 부르면 예쁜 목소리를 내며 냉큼 답한다. 언젠가 집 전화기를 들고 휴대폰을 불렀더니 답이 없었다.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그것은 나의 비서 역할을 해 내고 있었다. 그렇담 누구의 손을 타고 간 것인가? 귀를 나팔 통처럼 벌리고 애타게 불러댔더니 그것이 부르르 떨며 존재를 알려 왔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것이 소파 구석에서 방석을 덮고 떨고 있었다. 좀 전 예배 중이라 진동으로 돌린 것을 잊어먹고 그렇게 불러댔던 것이다.
이런 숨바꼭질을 시도 때도 없이 해야 하니 이제 싫증이 난다. 그래서 물건을 둘 때는 기억을 해 두려고 애를 쓴다. 찾기 좋은 곳에 둔다든지 항상 그 곳에 그 물건을 두는 자리를 마련 한다든지 신경을 바싹 조여 본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날씨가 쌀쌀하기에 겨울옷은 꺼내고 얇은 옷은 저장해 두었다. 작년에 분명히 잘 챙겨서 넣어 두었는데 1년이 지나고 나니 찾지 못하는 옷들이 더러 나왔다.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옷을 모두 꺼내 산더미처럼 부려 놓고 하나하나 찾았다. 방 네 곳을 돌며 장롱과 행거를 다 뒤져도 없다. 그제야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은 '작년에 재활용 수거함에 내다 버린 것 같다.'였다. 적금 통장도 잃어버리고 인감도장, 신용카드도 잃어버렸다. 이것들을 분실 신고 하고 재발급 받느라 땀 꽤나 흘렸다.
이렇게 숨바꼭질을 조장하는 데는 분명히 배후 세력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나를 괴롭히려는 계획이라도 세워 둔 것인가.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며 나를 괴롭히는 걸 보니 예사 놈은 아닌 것 같다.
그는 내 머리 위에 앉아서 나의 모든 일상을 주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서 세력 다툼이라도 벌인 것인가? 아님 그때 그 총명했던 기억력이 스스로 떠나버린 것인가? 분명한 것은 지금 내 머리 속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별로 똑똑하지 못한 흐릿한 기억력인 것 같다.
확실치는 않으나 아마 그 어떤 힘이 나를 숨바꼭질의 늪으로 밀어 넣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들의 목적이 나를 괴롭히려는 것인가? 아님 물건을 찾게 해서 억지로라도 운동을 시키려는 것인가? 아무래도 기분이 영 좋지 않다. 그 옛날의 총명이 나를 떠나버렸다면. 다시 부를 수 없다면. 포기하는 것은 남아있지 않은가.
그래! 포기가 있었지! 그러면 저들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않겠나?
나름대로 그들을 이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첫째는 숨어버린 물건을 찾느라 진을 빼지 않기다.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찾을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안달 할 필요가 없다. 다음으로는 안경을 하나 더 사게 되면 임시낭패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또 작은 물건들도 여러 개 사 놓고 번갈아가며 쓰면 될 것이다. 옷은 찾다가 없으면 다른 옷을 입으면 간단히 해결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를 부리고 있는 흐릿한 기억의 올가미에서 벗어난 것 같아 후련하다.
찾지 못하면 찾지 말지 뭐! 아마 나를 조종하던 그것들이 먼저 손을 들 거다.
이 다음에 손자가 와도 숨바꼭질놀이는 하지 않겠다고 미리 백기를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