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편
로마에서 저녁에 또 쿠셋열차를 타고 스위스 취리히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전광판에는 취리히가 없고 제네바가 뜬다. 이런 일은 로마로 갈 때 경험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다행히도 차 안에는 우리 두 모녀 밖에 없다. 너무 편하게 됐다. 완전 독방이 아닌가! 잘만 하면 이런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이 도처에 늘려 있다. 잇달아 행운이 또 나 타났는데, 여기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영국서 같이 투어 했던 부부와 로마서 같이 투어 했던 부부를 만났다. 모두 스위스로 가는 길이란다. 조금씩 일정이 달랐지만 스위스 일정은 겹쳐진 모양이다. 오늘은 좋은 일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고 있다. 피렌체역에서 한국아가씨가 우리 방으로 배정되어 오게 된 것도 행운 중 하나다. 이 아가씨는 직장인인데 2개월 동안 혼자서 유럽 각지를 돌며 여행하고 있는 중이란다. 똑똑한 아가씨라 배울 점이 많았다. 이 아가씨는 취리히로 가기 전에 루체른에 내려서 유람선을 타 보자고 했다. 우리는 그러자고 동의하고 이제 3사람이 다녔다. 사진도 찍고 멋진 나무다리도 건너보고 자유여행의 멋을 한껏 누려봤다. 그러나 유람선은 시즌이 끝나서 탈 수가 없다니 아쉬웠다.
3사람이 기차를 타고 알프스로 가기위해 인터라겐으로 이동했다. 창 밖에 펼쳐진 풍경은 그림 같았다. 아름다운 산과 마을이 있고, 풀을 뜯는 양과 소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했다. 동화 '알프스의 소녀'의 배경이 된 동네가 바로 여기인 듯했다.
스위스는 관광객을 위해 길 안내가 잘 돼 있었다. 기차 안에도 각 좌석 앞에는 안내 테이블이 있고 거기에 역의 이름이 명시 돼 있었으며 안내 방송도 친절하게 해 주었다.
인터라겐에 내려서 그 아가씨는 민박을 구해야 했고 우리들은 예약한 호텔이 있어서 헤어졌다. 시골이라 그런지 길 찾기가 아주 쉬웠다. 영어를 쓰면 말이 잘 통했다. 또 안내데스크에서는 묻는 길에 대해 컴퓨터로 프린트해서 중요한 부분은 형광펜으로 표시까지 해 주었다. 여기 오니 한국 관광객이 많다. 그래서 한국 관광객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 예로 서툰 한국어를 써서 물품을 판매하는 곳도 더러 있었다. 어떤 시계 점 창문에는 '안녕 하제요. 한국사람 20% DC' 라고 적혀 있기도 했고, 편의점에는 '신 라면 큰 사발 7프랑, 작은 사발 5프랑'이라 적어 놓기도 했다.
호텔도 쉽게 찾았는데 또 반갑게도 로마에서 같이 투어 했던 청년 두 명을 여기서 만났다. 그들도 내일 알프스에 오를 것이라 했다. 이국땅에서 같은 민족을 만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유럽 여행에 많은 한국 청년들이 참여하고 있음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있어 길거리를 나갔더니 한 무더기의 한국 학생들이 배낭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들은 유스호스텔에 묵으면서 자신들이 식사를 해결한단다. 나는 가져 왔던 반찬과 생필품을 그들에게 주었다. 우린 내일 알프스에 갔다가 오후엔 독일로 가서 다음 날 돌아갈 것이니 필요가 없다. 또 우리 둘은 호텔에서 묵으니 샴프니 비누니 하는 것은 처음부터 필요가 없었다. 고추장, 라면, 샴프, 비누, 햇반, 깻잎 김치 등을 골고루 나눠주었다. 그들에게서 미래의 희망이 보였다. 내가 20대의 젊은 나이에 국내를 누비고 다녔던 때가 생각난다. 만약 그때 이런 해외여행이 허용됐다면 나도 저 대열에 끼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알프스에 오르기 위해 '융프라호흐'라는 산악 기차를 탔다. 우리가 가는 산은 베른 알프스 산맥에 속해 있는 융프라우산이다. 이 산은 알프스의 고봉 중의 하나로 해발 고도가 4158m이다. 우리는 이 곳을 기차를 타고 3700m 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이런 높은 곳까지 철도를 가설 할 수 있다는 기술이 놀랍고 부럽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철도역인 융푸라호흐 역에 내려서 엘리베이트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보니 온통 눈밭이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고는 눈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빛이 찬란하다. 딸아이와 나는 설원에서 뒹굴며 미끄러지기도 하며 꿈인지 생시인지도 구별 못했다. 더러는 스키 장비를 가지고 스키를 타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들은 그저 높은 곳에서 미끄러져 내리며 눈 지치기만 계속했다. 꼭대기에 있는 상점에서는 간단한 음료와 라면을 팔았는데, 기차를 이용한 사람에게는 신 라면을 서비스로 준다고 해서 신청했더니 떨어지고 없단다. "대신에 주스라도 줄까?"라고 해서 그러라고 하고 주스로 목을 축였다. 이곳에서도 한국의 신 라면은 인기가 대단했다. 절로 어깨가 올라간다.
눈밭에서 한바탕 더 놀다 가려고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띵하다. 아마 고산증인 것 같아 서둘러 내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 한 분은 급기야 쓰러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융프라후 산은 경건을 느낄 정도로 깨끗한 산이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동네의 지붕도 빨간색으로 뾰족한 지붕이다. 푸른 초원에서 양떼와 소들도 잘 어울린다. 높이 올라갈수록 만년설을 뒤집어쓴 고봉이 보인다. 그러나 그 느낌은 두려움 보다는 포근한 느낌이다.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하산 후 짐을 챙겨 독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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