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편
독일로 가기 위해 서둘러 호텔을 나와 기차를 탔다. 스위스의 여러 도시를 거치면서 6번이나 기차를 갈아탔다. 우리의 목적지는 독일 '프랑크푸루트'이지만 내친김에 하이델베르크 까지 가서 100년이 넘었다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보려고 계획했다. 역에 내려 대학 가는 길을 물었더니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이때도 내가 기지를 발휘해서 찾을 지명을 영어 스펠로 적고 그 아래에 take the bus라고 적었더니 알아듣고 버스 번호를 알려주었다. 이젠 익숙한 솜씨로 발매기에서 버스표를 발급 받았다. 마지막 나라에 왔으니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아쉬운 점은 괴테 마을이나 전혜린 거리에 대해 사전 준비가 미흡해서 그 쪽으론 방향을 잡지 못하고 그냥 대학 캠퍼스에서 하루를 보내려고 했다. 역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에 대학이 있었다. 캠퍼스 바로 앞이 버스 정류장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잔뜩 낭만을 기대했는데 눈앞에는 덩그러니 건물만 있었다. 건물 주위를 한 바퀴 휘∼돌아봐도 주위는 도로로 연결 돼 있었다. 식당으로 갔으나 거긴 오늘 휴업이라 적혀있고 문이 잠겨있었다. 실망하고 버스 정류장에 섰는데 여중생으로 보이는 한국학생 둘이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속으로는 '저 어린 것이 벌서 담배나 피우고…'라는 생각에 못마땅했는데 말을 붙여보니 한국말을 제법 잘했다. 부모님이 한국어 학원에 보내줘서 거기서 배웠단다. 얘들은 독일에서 태어난 교포 2세였다. 그 애의 말이 여기 버스는 한 시간 안에는 내렸다 다시 타도 요금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도 대학에서 볼거리를 찾지 못했기에 역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버스에 오르면서 표를 보여줬더니 그냥 타란다.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하이델베르크 역에서 다시 프랑크푸르트 역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한다. 이 프랑크푸르트는 중요한 내륙 항이자 철도와 도로교통의 중추이며 부근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라인-마인 공항은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중의 하나다. 그래서 서유럽여행의 시작이나 끝을 이 공항에서 하게 된다. 우리 역시 이 공항에서 14일 간의 유럽 여행을 마무리해야 한다.
프랑크푸르트 역 안내데스크에서 마음씨 좋은 중년 아줌마를 만나 우리들은 환대를 받았다. 영어 발음도 정확했고 어린 딸아이와 여행 다니는 것이 보기 좋다고도 했다. 딸아이에게 귀엽다는 말까지 하며 친절하게 호텔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호텔에 돌아와서도 정중한 환영 인사를 받았다. 객실에 들어서자 벽에 부착된 모니터에서 한국에서 온 류귀숙, 김은성을 환영한다고 영자로 떠더니, 환영의 팡파르도 울렸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관광지에서 이렇게 환대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거리 곳곳에는 한국 기아 자동차의 간판이 보이고, 우리나라 유명 전자 회사의 간판도 보였다. 시간이 있어 거리를 돌며 독일인들의 모습을 주마간산하며 둘러보았다. 뭔지 모르게 친근감이 들었다. 독일인들도 우리 민족에게 호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0년대 초 파독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 두 나라의 관계가 이미 우호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호텔 시설도 이번 여행에서 묵었던 호텔 중 가장 좋았다. 이튿 날 아침 식사 또한 기대 이상으로 풍성했다. 유럽에서 회까지 먹게 됐으니 그 다양함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표도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훨씬 가벼웠다. 언제 또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도 컸다.
공항은 규모가 너무 커서 우리가 타야할 항공기 데스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 인천공항에서는 A, B, C, D 의 알파벳을 따라가면 항공기의 탑승 수속을 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다. 이때도 중년 아저씨를 찾아 물을 수밖에…. 몸집이 좋은 중년 아저씨에게 캐세이퍼시픽에 탑승하려 한다고 했더니 친절하게 자기를 따라 오란다. 별로 인기 없는 항공사는 제2 터미널에서 탑승해야 한단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찾을 수 있었겠나? 아저씨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가 모노레일을 타고 제2 터미널까지 이동했다. 그 아저씨는 우리가 홍콩 비행기를 타려고 하니 중국인으로 알았나 보다. 중국어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우린 한국인이라 말했고 한국말로 고맙다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제는 설렘, 기대감, 불안 등의 감정들은 이미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해뜨는 동쪽 나라에서 해지는 서쪽 나라로 날아 온지가 14일이나 됐다. 이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구비 구비 고갯길을 넘고, 갯고랑을 건넜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휘∼ 지나간다. 처음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도 의외로 쉽게 풀리기도 했다. 어려움 속에도 보물찾기에서 찾았던 그 보물이 곳곳에 들어있지 않았는가? 이렇게 인생살이의 축소판을 보듯 여행은 인간을 한 발짝 성숙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게 여행의 장점이자 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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