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말 달리던 선구자

류귀숙 2018. 1. 13. 17:27

  말 달리던 선구자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 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선구자 노래의 첫 구절이다. 이 노래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빼앗긴 나라를 찾겠다고 차디찬 만주벌판을 달렸던 독립투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그들의 울분에 찬 결기가 보인다.

 대구 공항을 출발해 북경을 거치고, 백두산에 오른 벅찬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데, 다음 코스인 용정으로 향했다.

 넓은 만주 벌판을 누비며 오로지 조국 독립에 몸 바쳤던 선구자들이 이 용정시를 무대로 활동했다. 그때 그 용정으로 들어오니 선구자들이 활동했던 그때가 상상의 나래를 펴고 다가온다. 해란 강을 건너며 그때의 울분을 삼켜 본다. 또 일송정은 어떻고? 일송정의 푸른 솔을 기대했는데 오르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가이드는 저기 산 중턱에 보이는 정자를 가리키며 저기가 일송정(一松亭)이라 했다. 그 정자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망원렌즈로 당겨 본다. 원래는 정자가 아닌 소나무로서 일본이 우리의 정기를 없애려고 소나무 뿌리에다 약을 투여해서 말라 죽게 했다고 한다. 그 후 같은 자리에 몇 차례 소나무를 심었지만 얼마 안가서 죽어버리는 바람에 소나무 대신 정자를 지었다고 전한다.

 선구자들이 밟았던 용정! 독립운동의 산실인 대성 학교가 있는 곳! 오늘 선조들의 발자국 위에 내 발자국을 찍는다.

 북경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조선족 자치주인 연길 공항에 내릴 때부터 포근함이 느껴졌다. 연길 공항이라는 한글 간판이 고향에 온 듯한 친근감을 주었다. 우리 민족이 살고 있고, 우리 문화가 오롯이 살아있는 이곳 '연변조선족 자치주' 뭔가 뭉클함이 밀려온다. 그래도 중국은 소수민족에 대한 배려가 있어 다행이다.

 지금은 말 대신 버스를 타고 그때 그 곳을 달린다. 발밑으론 무심한 해란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마음은 한줄기 외길 따라 꿈길을 걷듯 간다. 원초적 본능이 우리 민족의 울분을 전달 받아 그때 감정에 사로잡힌다.

 끝없는 만주 벌판의 끝은 지평선에 걸려 해가 저물어 간다.

 지금은 남의 땅이지만 그 옛날 고구려 발해 시대에는 우리 땅이었지? 우리 민족이 파 놓았던 용두레 우물을 지나 저항 시인 윤동주가 다녔던 대성 중학교에 도착했다.

 늠름하게 서 있는 윤동주의 시비 '서시' 앞에 서니 일제의 고문으로 초췌하게 야윈 윤동주 시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모진 고문 앞에서도 결코 굽히지 않았던 시인의 강인함으로 두 주먹이 절로 쥐어진다. 우리 일행은 윤동주 시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후손들에게 보여줘야겠다고 다져본다. 그때의 얼이 서려 있는 박물관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독립 운동사가 있고, 우리 민족의 한이 서려있다.

빼앗긴 자들의 슬픔이 소복이 쌓여 있는 대성 중학교를 뒤로 하고 국경 지대인 두만강을 향해 달린다.

 두만강을 가려면 중국의 도문 시로 가야한다. 도문을 향하여, 두만강을 향하여, 우리들의 마음은 온통 두만강 푸른 물로 가득 찼다. 국경이 가까워진다는 것은 북한 땅이 가깝다는 뜻이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은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두만강 푸른 물은 지울 수가 없다. 멀리 북한의 산들이 보인다. 하나같이 숲이 없는 민둥산이다. 중국과 연결된 기차 길이 보이고, 북한 땅에 크게 써 놓은 구호가 보인다.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반은 북한 것이고 반은 중국 것이다. 이곳은 두 나라 간에 공식적으로 오고 갈 수 있는 곳이다.

 멀리 북한 땅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 집단으로 일하는 것 같다. 이 얼마나 가고 싶고, 보고 싶었던 땅이냐! 멀리서라도, 언저리에서라도 볼 수 있는 게 다행이라 위로해 본다.

 우리의 선조들이 이 두만강을 건너 중국 땅 연변으로 들어왔겠지. 또 탈북 하는 북한 동포들도 이 강을 이용했을 것이다. 이 강은 우리 민족의 정서가 녹아있고, 애환이 서려 있는 특별한 강이다.

 두만강 푸른 물은 아예 없다. 우중충한 구정물만 흐르고 강폭도 아주 좁다. 한 걸음에 건널 수 있는 거리다. 노래 가사에 나오는 그 두만강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강 저쪽이 북한 땅 아닌가!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뗏목 유람선을 타고 약 30분 정도 걸리는 코스를 한 바퀴 돌아본다. 마침 뱃사공도 조선족 뱃사공이 아니고 탈북자란다. 비밀이라고 속삭이듯 말한다. 뗏목 배의 사장이 중국인이라 여차하면 신고할 수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조선족으로 알고 자신을 채용했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도 우리도 같은 민족이라 한 마음이 되어 "두만강 푸른 물에∼" 노래를 목청껏 불러 본다. 사공은 북한 땅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남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보너스로 반 바퀴 더 돌려줬고, 북한 땅 쪽으로 배를 대고 한참 서 있었다. 마침 북한 땅에 뿌리를 둔 수양버들 한 가지를 휙 낚아챘다. 그리고 북한 강변에 있는 강아지풀도 한  웅큼 뽑았다.

 갈 수 없는 땅! 동토의 땅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도 얼어붙는다. 가까운 곳에서 북한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다. 말이라도 걸어 보고 싶다.  배에서 내린 후 강 끝에 걸린 다리 위를 몇 걸음 걸어본다. 이 다리위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북한 땅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들은 중간 경계선에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입속에선 '그래도 두만 강은 흐른다.'라고 속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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