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킹 만에 배 띄우고
불덩이 하나 꿀꺽 삼키고도 능청능청 푸른빛으로 치장했다. 오늘은 그 불덩이를 살짝 건져 올려 그날의 비밀을 알아내리라.
치열했던 베트남 내전의 서막이 올랐던 통킹 만이다. 이곳 통킹 만에서 미군의 구축함이 북쪽 베트남군에 의해 격침당했는데 이를 통킹 만 사건이라 부른다. 이 사건으로 미군이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맑고 푸른 바다가 전쟁의 불씨를 당겼다는 말이다. 그때의 치열했던 전투를 알고 있는가? 그러나 지금은 한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길을 유혹하고 있다. 이 통킹 만이 바로 하롱베이의 기점이다.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다. 거기다 한 점의 바람도 없으니 하롱베이를 마음껏 탐할 수 있게 됐다.
잔잔한 물결 위에 유유히 떠 있는 배 안에서 천하절경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될 줄이야….
절경 앞에서니 눈앞에 과거가 확 다가온다. 15년간 남과 북이 피 흘려 싸웠던 이곳 베트남은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 우리나라도 이 나라처럼 한국전쟁이라는 내전을 경험한 나라다. 또 베트남전에는 우리 국군이 직접 참전까지 했으니 인연이 깊다고 하겠다. 지금은 화약고가 되었던 피의 역사를 뒤로하고 통일된 나라, 평화의 나라로 다시 일어서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베트남에서는 다른 여행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아림이 있고, 또 남 같지 않은 친근감이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했던 혈맹의 나라이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 노력과 반대의 결과를 맞았지만 지금은 베트남 여성과의 혼인으로 한 가족의 테두리로 성큼 다가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어릴 적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파월장병을 향해 소리 높여 외쳤던 한마디다. '이기고 돌아오라 대한의 용사여!'
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 용사들이 떠날 때마다 파병의 노래를 불렀고, 가사내용 중에 그 한마디가 기억에 남아있다. 한창 메인 뉴스로 떠올랐던 강재규 소령과 이인호 소령의 무공담도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아득하게 먼 나라로만 여겼던 월남이 내 앞에 있다. 지금 눈앞엔 환상적인 기암괴석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다. 위에서 보면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른 모습이 더욱 더 신비롭다. 하롱베이는 통킹 만을 기점으로 활짝 열려있다. 과연 세계7대 자연유산에 들어갈 만하다. 눈앞에는 날카롭게 깎아지른 듯한 바위섬들이 절벽을 이루며 이웃한 섬들과 도란도란 얘기하는 것 같다.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 이곳에다 보석과 구슬을 내 뿜었다는 전설을 지닌 하롱베이는 이름값을 하고 있다.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루는 3000여개의 섬들을 모두 볼 수는 없지만 스피드 보트를 타고 중요 섬을 점령해 본다.
핏빛의 역사를 삼켜버린 초록빛 바닷물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인다. 바라볼 때의 아름다움과 달리 가까이 들어가 보니 기묘한 모습들이 신비롭다. 생긴 모습 따라 연꽃 바위, 키스바위, 향로 바위 등의 이름표를 달고 있다. 작은 원숭이들이 살고 있는 항루원 이라는 원숭이 섬에는 작은 원숭이들이 다람쥐처럼 절벽을 넘나들고 있다. 준비해 간 야채 먹이를 던져 주니 반은 흘리고 반은 받아먹는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체가 살고 있다니 놀랍다.
섬들 중 규모가 큰 티톱섬의 전망대에 올라서 주위의 섬들을 조망해 본다. 이 섬은 소련의 항공기 조종사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이 섬 입구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이는 베트남 전쟁 때 북 베트남에 공군 지원을 해준 소련의 조종사다. 호치민 주석은 전쟁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티톱'을 초대했는데, 그때 하롱베이를 관광시켰다고 한다. 티톱은 아름다운 하롱베이에 취해 이 섬을 선물로 달라고 했다. 호치민은 이 섬은 인민의 것이니 줄 수 없고 대신에 이 섬에다 티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겠다고 했다. 이 섬에는 유일하게 해수욕장이 있고 전망대를 통해서 내려다보면 섬 전체가 한 눈에 보인다. 이런 사연을 안고 있는 티톱섬에서 티톱의 동상 앞에 서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눈의 즐거움 외에 선상 요리도 일품이다. 싱싱한 해산물 요리가 입맛에 딱 맞다. 까먹기 귀찮은 새우요리는 도우미가 직접 껍질을 까 준다. 거기다 한국에서 먹던 회 요리까지…, 그 회도 귀한 다금바리 회다. 회 초장이 입맛에 맞지 않을까 생각하고 준비해 갔는데, 그럴 필요가 없이 모든 음식이 입에 맞다. 외국 음식이 이렇게 잘 맞기는 드문 일이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친근감이 묻어난다.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친구, 친척, 형제, 사돈이라는 친근한 단어를 써도 될 것 같다.
입국할 때부터 남다른 대우를 받았다. 입국 서를 생략한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건 감동이다. 중국 입국 시 열 손가락 지문을 요구하며 까다롭게 구는 것과 대조적이다. 맛사지실에서 만난 청년들 또한 싹싹하고 친절해서 남 같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첫 날 하노이에서 묵게 된 호텔도 우리나라 참빛 건설에서 건축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수준 높은 건축 솜씨가 자랑스럽다. 스포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박항서 감독도 이 나라에서 공을 세우고 있으니 우리의 위상이 세계로 벋어나가고 있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뿌듯하다. 돌아오는 발걸음도 가볍다. 다음엔 남쪽 베트남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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