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머무르고 싶은 그곳 크로아티아

류귀숙 2019. 5. 25. 19:40

      머무르고 싶은 그곳 크로아티아

 여행은 삶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또 다른 저편 어딘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서 추억 한 다발 건져올린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말을 섞지 않아도 인사를 하지 않아도 골목을 돌면 마주치는 얼굴들이 정답게 느껴진다. 지나간 시간 속에 살았던 그들이 남긴 기록을 보며 감탄하기 위해 다시 여정을 떠난다. 이제는 어떤 사람을 만날까? 또 어떤 역사를 만날까? 가슴이 쿵쿵거린다.

 이번엔 해변에 자리 잡은 크로아티아로 향한다.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아드리아 해의 숨은 보석 크로아티아! 이지러진 초승달 같은 생김새 그대로 아련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영국의 극작가'조지 버나드쇼'는 '지상에 진정한 천국이 있다면 바로 두브로브니크다.'라고 했는데 그 두브로브니크가 바로 크로아티아에 있다. 또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가 여생을 보냈던 아름다운 해안 '스플릿'도 품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알알이 영근 진주를 입 안 가득 품고 있다.

 이 보석 한 알 한 알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의 진가를 탐색할 것이다. 먼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첫발을 딛는다. TV에서 자주 봐 왔던 가장 오래된 성당인 '성마르코'성당을 만난다. 특이한 지붕을 오늘 여기서 만나 본다. 빨강, 파랑, 흰색의 아름다운 체크무늬 바탕의 지붕이다. 사진으로 보고 그림으로 보아왔던 그 성당이 바로 눈앞에 있다. 성당 내부에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조각가 '이반 메슈트로비치' 작품이 전시돼 있고, 아름다운 벽화와 프레스코화가 전시돼 있다. 이 성당을 재건하는 데 25년이 걸렸다고 한다. 자그레브 대 성당과 그 앞에 우뚝 선 성모마리아 상도 자그레브를 대표하고 있다.

 여행자는 한 곳에 머물 수가 없다 또 다시 다른 여행지로 떠나야 한다.

 다음 여정으로 한 알의 진주 트로기르를 찾는다. 트로기르는 역사의 도시다.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와 베네치아시대에 유행했던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을 만난다. 트로기르는 외세의 영향으로 지배 세력이 바뀌면서 여러 양식의 건축물이 지어졌고,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다. 비잔틴, 베네치아, 헝가리 등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에 따른 헬레니즘 양식과 로마 양식의 도시 배치구도로 중세 도시의 완벽한 모습이 잘 보존돼 있다.

 다음 진주 알갱이를 건져 올리려 스플리트로 향한다. 이곳은 로마시대의 마지막 군인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가 퇴직 후 별궁을 짓고 여기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바닷가 휴양도시인 이곳은 달마시안의 꽃으로 불리며 무역 중심 도시답게 번창했던 도시다.

 바다에는 요트가 떠 있고, 해변 가의 '리바'거리엔 야자수가 죽 늘어서 있다. 그 거리엔 또 시장이 있어 볼거리를 더해주고 있다. 중심 건물인 '디오클레시안 궁전'은 지붕 쪽은 많이 훼손됐으나 지하부분은 놀랄만하게 잘 보존돼 있다. 황제가 마지막을 보낸 궁전답게 목욕 탕 규모와 궁전의 크기가 여느 궁전에 뒤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옆에 있는 '성 도미니우스' 성당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순교한 성도미니우스 주교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황제의 영묘 자리에 주교의 유해를 봉헌했다고 한다.

 로마가 망하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관이 있던 자라에 기독교인들이 대성당을 짓게 됐다. 이렇게 역사는 돌고 도는가!

 성문을 나와 우뚝 선 '그레고리우스 동상 앞으로 갔다. 동상의 규모가 크다. 높이만도 4,3m라고 한다. 이동상의 주인인 그레고리우스는 10세기 때의 주교였는데 당시 라틴어로만 진행되던 미사를 크로아티아어로 할 수 있도록 힘쓴 분이다.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모두들 발가락을 만져 노란색 황동이 반짝인다. 어느 나라든 이런 미신적 이야기가 있고, 이를 따르는 무리들이 있다. 다시 시장으로 와서 과일을 샀는데 kg당 7유로라는 것을 5유로로 깎아서 체리, 복숭아, 살구를 샀다. 여기서도 흥정의 재미를 봤다.

 이제 메인 여행지인 '두브로브니크'다. 아드리아 해의 지상 낙원이라는 두브로브니크에 크루즈를 타고 접근했다. 아드리아 해의 신기루라니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배를 타고 올 때부터 해변 가에 엎드린 집들에 매료됐다. 빨간 지붕을 이고 있는 아름다운 집 한 채 얻어서 한 달쯤 살고 싶다. 푸른 산과 푸른 바다에 잘 어울리는 환상의 콤비다.

 짙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는 곳에 있는 높이 25m 길이 2Km에 달하는 흰 성벽을 오르려니 꽤나 힘이 든다. 그러나 성벽에 올라 서서 내려다 본 두브로브니크는 동화 속 마을이다. 이걸 보기위해 땀을 흘리며 올라온 것이다. 굽이굽이 성벽을 돌 때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동네의 모습은 장관이다.

 중세의 옷을 아직도 벗지 않고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플라차'거리에는 매끌매끌 닿아서 오히려 빛나는 대리석이 깔려있다. 오늘 날의 보드블록보다 훨씬 운치가 있다. 높은 벽 사이로 난 좁은 길은 중세의 역사를 증언하는 듯하다.

 마을 중심광장에는 시계탑이 있다. 그 옛날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고, 자와 저울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옛날 이곳에서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말해주고 있다.

 광장 정 중앙에 렉터궁전과 그 옆에 총령 집무실이 있다. 왕궁과 총령 집무실이라니! 특이한 모습이다. 우리의 청와대가 경복궁 부속 건물에 있는 격이다. 그런데 이 글귀를 보고는 의문이 풀렸다. "사적인 일은 잊고 오직 공사에만 철저하자." 이 나라는 14세기부터 총령을(대통령) 선출했는데 임기는 1개월로 하고 보수도 없다. 그리고 재임 기간에는 궁 밖으로 나올 수 없다. 그러니 오로지 국가를 위해서만 봉사해야한다. 태통령 집무실이 클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됐다.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유한 자유 복지국가였던 두브로브니크가 이런 통치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다시 한 번 놀랐다. 오늘에도 되살려볼 가치가 충분하다.

 아름다운 경치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수준 높은 의식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마지막 진주인 '플리트비체'로 향한다. 이곳은 영화'아바타'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16개의 호수가 90여개의 폭포와 연결돼 장관을 이루는 이곳은 천상의 도시인 듯하다. 물길이 이어지는가 하면 에메랄드빛 호수가 나타나고 어느새 눈부신 물방울이 거품을 뿜는다. 천상인지 지상인지 구별을 못하고 혼미한 가운데 발길을 옮겨본다. 계곡 규모가 커서 한 번에 모두 볼 수가 없다. 몇 구역으로 나눠서 본다면 아마 며칠은 걸릴 것이다. 호수의 깊이가 깊고 또한 맑아서 미세먼지로 찌든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특히 '밀카테르니아'폭포는 세계적 오페라 가수의 이름을 땄다. 그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조성과 보호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자연과 그 자연에다 인간의 지혜를 더한 건축물이 오늘 날에는 귀중한 유산이 됐다. 이렇게 인간은 자연과 하나 되어  더욱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고 후세에 물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후세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지 생각해 봐야겠다.

 이제 크로아티아를 뒤로 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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