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소의 울음>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어미 소의 "움 머~~ 움 머~~" 하는 크고 느린 톤의 새끼 부르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린다.
내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기르던 어미 소가 새끼를 낳으면 어미 소는 그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다독이며 혀로 온 몸을 핥아주며 사람 못지않은 정성을 쏟는다. 그러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 중 송아지가 되면 그 새끼를 팔게 되는데, 그 때마다 새끼 잃은 어미 소가 며칠을 울며 몸부림친다. 특별 식으로 콩깍지, 보리쌀 등을 넣어 소죽을 끊여 줘도 본체 않고, 마구간을 뛰쳐나갈 기세로 울부짖는다.
그러나 코뚜레의 벽을 넘지 못한 탈출 시도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체념으로 이어지게 된다.
어미 소는 그 큰 눈에 눈물을 방울방울 달고 원망의 눈망울을 굴리며 움 머~~ 움 머~ 울면서 자식을 불러 볼 뿐 뾰족한 수가 없다.
그때는 자식 잃은 어미의 애절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항공기 사고로 딸을 잃은 부모의 침통한 모습을 대하니, 그때의 그 애처로운 어미 소의 울음소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자식 잃은 슬픔이야 사람이나 짐승이나 별 차이가 있겠는가?
잘 다녀오겠노라 환하게 웃던 딸아이의 모습은 음매- 음매- 어미 찾는 송아지의 울음이 되어 허공을 나른다.
실낱같은 희망 줄 붙들고 '얼마나 애타게 어미를 찾았을까' 생각하니 그 애처로움이 이 세상 어미들의 가슴을 때린다.
이제 내가 어미 되어보니 그 소리들이 모두 나에게로 달려오는 듯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 중에 사랑이 으뜸일 것이다. 성경에도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으뜸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 사랑의 감정 중에도 남 녀 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사제지간의 사랑 등 많은 관계의 사랑이 있는데, 그 중에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모든 어려움을 감내한다. 그 어려움이 이글거리는 용광로 속이거나, 파도가 넘실대는 망망대해에 뛰어들어야 할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며칠 전 그 최고봉의 사랑 앞에서 모든 어미들이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한 일이 벌어졌다.
이름 하여 '냉장고에 들어간 모정'이라는 사건으로 막내아들 집의 냉장고에서 최후를 맞이한 70대 어머니의 이야기다.
그 숭고한 사랑 앞에 어미들이 모여 애타는 어미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또는 어미 잃은 자식의 애절한 마음이 되기도 하여, 쉼 없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최대의 사랑을 베풀고 간 한 어미의 죽음은 사랑이 식어가는 이 시대에 사랑의 열기를 지펴 주고 간 표본이 됐다.
막내아들이 어렵게 식당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인건비라도 절약해 보자고, 늘 궂은일을 마다않고, 자식의 일을 도왔다고 한다. 그 날도 냉동실에 남은 고기들을 정리하러 냉장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냉장고 문이 자동으로 닫히는 바람에 변을 당했단다.
집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사람이 보이지 않자 실종신고까지 했는데, 우연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냉동된 어머니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막내아들의 놀람은 또 어땠겠는가?
어미와 자식의 슬픔이 얼음처럼 엉겨 붙은 현장에는 냉동된 어미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자식이 있었다.
거기에 모인 자나, 소식을 들은 자, 모두 아낌없는 어머니의 희생에 피눈물을 흘렸으며, 어미 찾는 자식의 울음도 송아지 울음처럼 메아리 되어 돌아왔다.
최후의 온기가 얼어붙을 때까지 새끼 부르는 어미의 절규가 가슴을 후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갈 때 태산준령을 만날 때가 더러 있는데, 어려움 속에서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어머니의 존재다. 어머니가 비록 떠나시고 안 계셔도 옛날 사랑 받았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어머니의 고생이, 또 사랑과 희생이, 고스란히 뇌리에 남아있는 한 사소한 어려움은 이겨 낼 수 있는 것이다.
냉장고에 들어간 어머니의 아들 또한 그 어머니의 희생을 생각한다면, 생활의 어려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울 때마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 자식들의 앞길에 등대로 밝혀 질 것이니까.
이 세상이 혼탁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중국 초나라 시인 '굴원'도 '어부사'에서 거세개탁(擧世皆濁)이라 했을까? 이는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이 없어, 혼자 깨끗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혼탁한 물을 정화시킬 수는 없을까?
나는 그 해답을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에서 찾고 싶다.
흐린 물속을 헤매는 무리들 속에서 그 숭고한 사랑을 잃은 자가 늘어나고 있다. 자식을 찾지 않는 어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오염의 속도가 점점 빨라져 어미가 자식을 버리는 일은 심심찮은 뉴스가 됐고, 심지어 어린 자식을 비정하게 죽이는 일 까지 벌인다니! 경악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 또한 늙은 어미나 아비를 공격하는 일은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지 오래다. 이런 부모의 불효를 보고 자란 자식이 바르게 자랄 수는 없는 일이다.
어미 소가 새끼를 부르듯 자식 찾는 소리가, 또 자식이 어미 찾는 소리가, 메아리 칠 때 이 세상이 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움 머~~하는 어미 소의 울음에 음매-하고 답하는 송아지의 울음 소리가 화음을 이루는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