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질투

류귀숙 2013. 9. 27. 17:52

       <질투>

 "할머니! 형아 좀 보세요. 내 것 뺏어갔어요." 하는 소리에 돌아서니, 큰놈이 동생의 북극곰인형을 냉큼 빼앗아간다.

 우는 애를 달래며 '우리 T. V보자.' 하면서 안고 누워 T. V를 켰더니, 마침 T. V에선 북극 지방의 생태계를 다루고 있었는데, 작은애가 좋아하는 북극곰, 펭귄 등이 나와서 우는 애를 달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이렇게 누워 T. V를 보면 저절로 잠이 들지 않겠나?'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때 큰놈이 득달같이 달려와서 작은놈 누운 앞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동생이 T. V를 못 보게 최대한 눈을 가릴 수 있는 위치에서 벌렁 드러눕는다. 작은놈은 안 보인다고 자지러지게 운다.

 나는 매양 큰놈만 나무랄 수 없어 작은놈을 거꾸로 눕혀 머리를 제 형의 다리 뒤에 오게 했다. 마치 한 켤레의 운동화를 포개놓은 것 같다.

 이번엔 또 큰놈이 작은놈의 얼굴을 발로 톡톡 찬다. 작은놈의 울음소리 낭자하게 울리고, 큰놈은 헤벌쭉 웃는다.

 추석이라고 큰 딸이 데리고 온 외손자들인데, 큰애는 7살, 작은애는 4살이다. 큰애는 덩치가 큰 편이나, 작은애는 잘 먹지 않고 쟁쟁거리더니, 몸집도 또래 아이보다 한참 못 미친다.

 제 어미는 작은애가 걱정되어 자연히 감싸게 되고 맛있는 것 해다가 억지로 입 속에 넣어 주며 지극정성이다.

 오늘은 친정에 온 김에 두 아이 나한테 맡기고 외출한 사이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큰 애는 7년 전 한껏 봄이 무르익어 장미꽃 모란꽃이 앞 다투어 향연을 벌이던 5월에 평화의 사도로, 천사의 모습으로 사뿐히 내려왔다.

 순한 눈망울로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함박처럼 벌려 소리 없이 웃는다. 그 아이는 우주에 존재하는 善 중 최상의 선을 가슴에 안고,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로 우리들에게 왔다. 내 품에 안겨 쌔근쌔근 잠잘 때는 집안 가득 행복이 넘쳤다.

 그 아기 천사와의 만남은 두근거림이었고 설렘이었다. 어둔 세상에 빛으로 온 것임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의 세계 최대의 음악가가 작곡한  음악을 들려주며 마냥 선하고 아름답게 자라주기를 바랬다. 자라면서 그 애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입을 한껏 벌려 활짝 웃는 모습이 예쁜 그 아이는 다른 애들에게 자기 물건을 빼앗겨도, 또 공격을 당해도 대항하지 못하고 소리 죽여 눈물만 흘렸다. 애 엄마는 사내아이가 너무 약하다고 대 걱정이었다.

 그러던 아이가 변했다. 어디서 왔는지 그 아이의 마음에 욕심이 자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확한 시기는 아마 세살 때로 기억된다. 큰딸이 작은애를 임신 하고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것 같다.

 동생은 필요 없다느니,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싶다느니, 하면서 어린 것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더니, 급기야 동생이 태어나자 강도를 더해 갔다. 틈만 나면 동생 해칠 궁리만 하니, 그 천사 같던 모습은 어디가고 동생을 괴롭히는 장난꾸러기로 변했을까?

 제 부모에게는 물론 친가, 외가에서 두루두루 사랑받는 맏이로 태어나서 그 큰사랑을 독차지했는데, 그 사랑을 조금도 나눠주기 싫은 욕심쟁이가 됐다.

 눈이 크고 선한 모습을 한 그 아이 마음에 질투심이 자리 잡고부터는 동생 것을 다 빼앗고, 어른들 눈을 피해 시시때때로 동생을 공격했다.

 옛 부터 성인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상반된 이론으로 팽팽하게 맞섰다. 이름 하여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 논쟁이다.

 지금 보니 내가 지지한 성선설을 수정해야 될 것 같다.

 인간은 주위환경과 학습에 의해 악한마음이 싹트는 것이지, 최초의 인간본성은 선한 것이라는 주장을 지지했었는데.....

 큰손자를 보니 악의 환경도 악에 대한 학습도 전혀 없었지만 이미 그 애의 마음 밭엔 욕심과 질투가

 자리한 것이 아닌가!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에 이르니라."는 성경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죄의 밑바탕엔 인간의 욕심이 깔려 있음을 쉽게 볼 수 있다.

 욕심이 지나쳐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는 도박으로, 사기로, 도둑질로 인생을 망치고, 사회를 좀먹게 한다.

욕심이 잉태하여 상대가 잘 되고 우수한 능력을 가지면, 그 것을 못 봐주는 질투심으로 인해 갖은 묘략과 술수로 상대를 넘어뜨리게 된다.

 그렇다면 '큰애의 가슴에 자리한 그 욕심의 씨앗을 학습으로 변화시켜 선의 싹으로 만들어 주면 되지 않을까.' 큰애가 상처받지 않고 동생을 사랑하게 하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잠시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애가 작은애를 끌어내어 구석으로 밀어붙이며 큰 소리로 꾸짖더니, 가지고 있던 베개로 사정없이 동생을 때리는 게 아닌가!  구석엔 진열장이 있고, 그 위엔 흔들리면 떨어질 도자기들이 있어, 아찔한 순간 이었다. 때마침 애 엄마가 돌아 왔으니까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

 오늘의 전쟁 원인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그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동생에게 부모의 사랑을 빼앗긴 큰애가 할머니 사랑이라도 독차지 하려 했는데 내가 동생 편을 들고, 또 안아주고 했더니, 그 사랑마저 빼앗긴다는 위기감이 동생에 대한 질투로 작용한 듯하다.  

 작은애 어미에게 돌려주고 큰애 안고 토닥였다. '내일은 들판에 나가 메뚜기, 방아깨비, 여치 잡으며 놀아보자.'고 새끼손가락 걸며 약속했다.

 큰아이 얼굴이 활짝 핀 목련같이 선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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