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고비 사막을 가로지른다. 모래벌판을 지나고, 돌산을 돌아가니 누리끼리한 풀들이 가물에 콩 나듯 드문드문 보인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목마름을 모질게도 견디고, 앙칼지게 버틴 풀들이 아니던가?
그 풀들은 양떼에게 뿌리 채 몸을 내 줘 양식을 공급하고 있었다.
어떤 풀이기에 이토록 숭고한 희생을 감내하는지 궁금해 차에서 내려 살펴봤더니, 앙상하게 가시가 숭숭 돋은 까칠한 풀과, 납작하게 땅에 달라붙은 게 우리나라의 쇠비름을 닮은 풀이다.
무성하게 하늘로 쭉쭉 뻗은 우리나라의 잡초들이 생각난다. 풀 한포기가 아쉬운 사막에서는 그들이 잡초라는 이름으로 평가 절하될 수 없다.
'참 풀? 진 풀? 귀 풀?' 어느 이름이라도 좋다. 그들에게는 최고로 귀한 이름이 붙여질 것이다.
뽑아도, 뽑아도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잡초들은 농민들에게는 천덕꾸러기요, 골치 덩어리다.
예전엔 손으로 뽑거나 호미나 괭이로 뽑아내면서 우리네 어머니들의 허리가 꼬부라졌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라는 '주병선'의 노래 가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 여름 뙤약볕에서 잡초 매는 여인의 애환이 실려 있다.
내가 몇 년 전에 조그마한 채전을 가꾼 적이 있는데, 여름 방학 때 한 열흘 쯤 여행 갔다가 돌아와 보니, 상추, 배추, 쑥갓 등의 채소는 간 곳 없고 잡초만 무성했다. 얄미운 잡초를 뽑으면서 '이 끈질긴 생명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또 이런 생명력을 부여 받았을 때는, 이들의 임무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과연 그랬다. 예전엔 뽑혀 나온 잡초가 소먹이가 됐고, 더러는 반찬도 됐다.
쇠비름, 참비름, 도토라지는 어느 나물 못지않은 맛있는 반찬이 됐다. 그 나머지는 거름이 돼서 농작물의 영양을 공급했으니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요즈음은 잡초들의 가치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더니, 급기야는 농민의 적이 되어 치열한 전쟁을 벌이게 됐다.
머리 좋은 농민은 끈질긴 잡초의 생명줄을 끊기 위해 악랄한 무기를 만들어 냈다. 그게 유명한 제초제와 비닐이다.
맹독성 제초제 뒤집어쓰고, 온 몸이 오르라져 바들거리는 잡초와, 비닐 속에서 숨통이 막혀 질식해 버린 잡초들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으면 이렇게도 가혹한 형벌을 받는 것인가? 인간의 잔인성이, 이기심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이런 잡초들이 사막에 있었으면 짐승들의 좋은 양식이 됐을 텐데......
지금 우리의 짐승들은 풀 대신 방부제 항생제 범벅이 된 사료를 먹고 있으니, 잡초라고 이름 지어진 풀들이 푸대접 받고 있는 것이다.
잡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농민들은 제초제에 짓밟히고, 비닐에 숨통이 끊겨 누렇게 시체로 남은 잡초를 보면서 개가를 부르지만, 이건 일시적 승리요, 앞을 못 보는 소경과 같은 짓임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누렇게 시체로 변했던 잡초들은 한 해가 지나면 또 다시 일어나 그 푸름을 앞세워 인간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하다.
임시방편으로 가해진 살상 무기의 피해는 우리 인간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게 된다.
제초제나 비닐로 인해, 땅은 생명력을 잃고 산성화 되어 점점 황폐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아간다면 이 땅에는 농작물조차 자라지 못하는 죽은 땅이 될 것은 불을 본 듯 뻔하다.
좁은 안목으로 보면 잡초는 농작물의 자람에 방해만 된다는 생각이나, 그렇지만은 않다.
잡초는 그 특유의 강인함으로 우리가 살아갈 자연을 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그 가장 큰 역할이 흙의 산성화를 막아 자연의 황폐화, 사막화를 막아준다.
잡초는 크고 작은 동 식물의 영양을 공급하고 삶의 터전을 제공 해 준다.
사람들에게 천시 받고 배척당한 이 잡초들이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염료와 향료, 질병 치료의 약제를 제공한다. 또 이 잡초 속에는 우리들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먹거리들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쑥, 쇠비름, 참비름, 도토라지, 질경이, 씀바귀 등은 좋은 먹거리다. 지금도 쑥떡은 대표적 음식이며, 씀바귀를 삭혀서 김치를 담으면 맛있는 음식이 된다.
또 최근엔 쇠비름에 항암 성분이 들어 있다고 방영된 후론 천시 받았던 쇠비름이 약제의 서열에 올랐다.
이렇게 인간은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가 보다. 그렇게 천시할 때는 언제고, 이젠 몸에 좋다니 잡풀도 약제라 대우해 주고 있다.
우리들은 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잡초들을 백성들에게 비유해서 민초라 일컫는다.
민초들은 잡초처럼 밟아도 밟아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일어나서 나라의 위기 때마다 나라를 구한다. 위정자들이 지키지 못한 나라를 민초들이 분연히 일어나서 위기를 극복한 것이 몇 번이던가!
민초들은 굶주림 속에서도 종족 보존의 임무를 다 했고, 찬란한 문화도 창조했다.
그들은 결코 칭찬을, 박수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다 할 뿐.
잡초란 말은 흔하지만 실제로 잡초는 없다. 곡식을 심은 논밭에 자라기 때문에 인간이 곡식 아닌 것이란 뜻으로 붙여준 이름일 게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개별 이름이 있고, 임무 또한 다양하다. 어느 것 하나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도 내일도 잡초와의 전쟁을 계속할 것이고, 민초들도 잡초와 같이 계속해서 생명을 이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