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품바의 나눔

류귀숙 2013. 12. 9. 18:31

        품바의 나눔

 으쓱으쓱 어깨를 들썩인다. 짓적짓적 앞발을 내민다. 양팔은 흔들흔들 엉덩이는 비틀비틀 보기 만해도 흥이 난다.

 가슴에서 목 줄기를 건너  한가락 울려 나오는 장타령이여! 우리의 소리여!

 "얼 시구시구 들어간다. 절 시구시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에라 품바가 들어간다."

 내 어린 시절은 볼거리가 귀할 때라 동네에 낯 선 사람만 오면 아이들이 신이 나서 쫄랑쫄랑 따라붙었다. 그 낯 선사람이 동냥아치거나 각설이 패라면 더욱 더 신이 났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한 숨 돌릴 때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드는 손님이 있었다. 이들은  7,8명이 떼를 지어 다니는데, 주로 면 소제지 등의 큰 다리 밑에서 움막을 짓고 겨울을 났다. 이들이 주둔하고 있을 때는 이상하게도 개별 동냥아치는 사라지고,  각설이패들이 자기네들이 무슨 사당패나 된 것처럼 깡통을 두드리며,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니며 공연 길에 나섰다.

아이들은 그들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은근히 자기 동네, 자기 집에 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대문 밖에서부터 장타령을 한 곡조 빼고는, 품바 타령을 뽑으며 대문을 향해 당당하게 들어 왔다. 때 만난 아이들은 이들의 관객이 됐고, 또 조연이 되어 따라다녔다.

 각설이들은 비록 동냥질은 하지만 공짜는 바라지 않는다. 노래 가사처럼 '품을 판다.'고  한다. 공연의 품을 팔고, 그 품값을 받아간다는 것이다.

 이들의 태도는 늠름하기까지 했고, 지나친 욕심도 부리지 않았다. 민초들의 따분한 인생살이를 한판 신명으로 풀어 주고자 할 뿐, 도둑질이나 남을 해치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웃끼리 품앗이 하듯 그렇게 품을 팔고 사고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이 들을 맞은 가정에서는 추수한 곡식이 됫박으로 나가고 고구마, 감 ,호박 등도 곁따라 나갔다. 마침 동네에 결혼식이 있으면 그들도 손님이 되어 잔치에 참여했고, 초상집을 만나면 조문객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가난한 가정에는 가지 않는다.

 각설이패가 지나가고 나면, 동네 아이들은 한동안 각설이 흉내를 내며 고샅을 내달았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 때문인가? 품바 공연 포스터는 그 옛날의 신명을 떠 올리게 했다.

 찌뿌드드한 일상을 품바의 신명에 실어 보내고 싶어졌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거지가 우리의 품바처럼 인기가 있었던가?

연예인을 능가하는 연기와 노래솜씨는 유럽의 집시노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의 장타령, 품바타령은 종합 예술이며, 민초들의 한을 풀어주고, 부조리한 사회를 풍자하는 소통의 도구다.  

 그들에게도 철학이 있고, 규율이 있다. 비록 거지 신분이지만 비굴하지 않았고, 양심이 살아있어, 빼앗거나 도둑질하지 않았으며, 가난한 자의 것은 탐하지 않았다.

 오늘에 와서 그 옛날 품바의 역사가 명인, 명창에 의해 재현되고 있다.

 명인 '이 계준'의 품바 타령은 그 예술성이 높이 평가되어 가는 곳마다 앙코르요, 해외에서도 인기리에 공연 중이란다.

 '아이러니하게도 웬 거지의 짓거리를. 무슨 가치가 있어 오늘에 와서까지 명창들에 의해 공연되는가?' 라는 평소의 의문은 '이 계준'의 품바공연을 보면서 그 해답을 찾았다.

 거기에는 우리의 노래가, 우리의 춤이, 민초들의 한 많은 인생살이가, 농익고 곰삭아 있었으며, 그 한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우리 민족의 역사가  있었다.

 구성진 장타령은 민초들의 한을 싣고, 고생 없는 피안의 세계로 짓적짓적 느린 걸음으로 성자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또 어깨춤이 절로 나는 품바 춤은 삶에 지친 민초들에게 한 판으로 시름을 날려주고, 신명나게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실어 주었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이라야 빈 깡통과 장타령뿐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이 땅에서 가진 것 없는 거지 인생을 해학과 풍자로 승화시켜 사랑의 꽃을 피웠다.

 이를 몸소 실천한 거지 성자 '최 귀동 할아버지' 이야기는 90년대를 장식하는 훈훈한 미담이 되어, 우리의 가슴에 사랑의 불씨가 되어 왔다.

 그는 자신 보다 더 못한 거지를 도왔다. 거동이 불편해서 동냥조차 할 수 없는 불우한 이웃에게 40년 동안이나 밥을 얻어 먹이고 보살핀 거지 성자이시다.

 그는 물질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는 팔 다리가 있으니 얼마든지 남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이 분이야 말로 이 시대를 사랑으로 밝힌 사랑의 등불이 아니던가?

 충북 음성군에서는 '품바 체험 예술 촌'을 건립한다고 한다. 특히 이곳은 사랑의 마을인 꽃동네를 만든 오 웅진 신부님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 최 귀동 할아버지 이야기도 오 신부님에 의해 밝혀졌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렇게 사랑을 몸소 실천한 품바의 정신을 삭막한 오늘에 이어받는다면 훈훈한 인생살이, 살만한 세상, 신명나는 인생이 되지  않겠는가?

또 이 품바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는 분연히 일어났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는 '김 춘삼'이라는 거지 왕초가 이끄는 거지들이 일본과 대항해서 독립운동까지 했다고 하니, 이들 또한 못가진 자의 울분을 민족 사랑으로 승화시킨 좋은 본보기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그들은 동냥이나 하는 거지일 뿐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야할 때다.

 품바의 사랑이야기는 정신적 빈곤으로 인한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판치는 이 시대에 청량제 역할을 담당했고,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했다.

 연말을 맞아 춥고 배고픈 이웃에게 품바의 사랑처럼 낮은 데로 펼쳐져 억눌린 자에게 평강을, 굶주린 자에게 배부름을, 절망으로 삶의 의욕을 잃은 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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