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

이두용 감독의 청송으로 가는길

류귀숙 2011. 6. 25. 09:31

  *1991년 11월 24일 상영    

    영화 제목: 청송으로 가는길     감독:이 두용  *여기서 청송이란  평생 나올수 없는 청송 감호소를 의미한다.

       * 대구 영화제가 열릴 때 감상문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임

    

                  <어둠의 자식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빛과 어둠은 항상 동시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생살이에서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걱정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늘에서 실패와 좌절의 늪을 헤매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그들은 밝음을 향하는 희망이 있다. 역경을 극복한 장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기에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두용 감독의 '청송으로 가는 길'은 빛과 어둠의 또 다른 세계에 격리되어 시궁창 같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상실한 채 오직 동물적인 생존 본능을  충족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 죄수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이야기는 안일하게 인생살이를 하고 있는 모두의 가슴에 폭탄처럼 와 닿는 어둠의 자식 '호주끼'의 이야기다.

  전과 38범이라는 꼬리표를 단 그를 흉악범이라 오인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지극히 양순한 시민이다.

  그는 불우한 그늘에서 양지로 발돋움하기 위해 몸부림치나 허사가 되고 의. 식. 주의 해결이 그의 최대 목표이며, 눈앞에 닥친 먹을 것을 해결 못해 빵을 훔치는 등 절도행위를 하다 감방 신세를 지게 된다. 형을 마치고 나오면 그를 맞아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형색이 남루하고 전과자이기에 일자리도 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독백한다. '오히려 감방이 낫다고' 그가 원하는 건 명예도 권력도 부도 아니다. 오로지 먹고 자고 입을 수 있는 것의 해결인 것이다.

  빵을 위해 일자리를 구하려 거리를 헤매다 후각을 자극하는 고깃국의 유혹을 받게 되고 즐비하게 진열된 음식의 유혹 때문에 또 죄를 범하게 된다.

 그는 또 흑염소 한 마리를 훔치고 재수감된다. 풀려나면 또 범죄하고 감방에 들어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  빠르기로 유명한 호주비행기에 비유한 '호주끼'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높은 담에 가려진 교도소의 내부는 일반인이 상상으로만 그리던 곳이다. 그런 곳을 화면을 통해 접하게 됐을 때 수감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 보다는 인간이  만든 굴레에서 신음하는 인간들의 군상을 보면서 善人을 위해 격리된 惡人의 울부짖음이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했다.

  순간의 잘못으로 인해 통한과 후회 속에서 바같 세상을 동경하는 수감자들은 추억속에 젖는 것도 잠시 뿐 배고픔과 무료함 때문에 잔인한 폭행과 몰염치한 일들을 자행한다. 그래도 그들은 기다리는 가족이 있고 쉴 수 있는 집이 있다.

  그러나 '호주끼'는 다르다. 출감된다는 것은 곧 굶주림을 의미한다.

  드디어 '호주끼'의 재판이 시작되었고 젊은 재판장은 그에게 징역 2년과 보호 감호 10년을 언도했다.

  엄청난 판결에 '호주끼'는 차라리 사형 선고를 내려 한 많은 생을 마감하게 해 달라고 했다.

  염소 한 마리의 형벌이 너무나 컸다. 부동산 투기하다 들어온 한 부자는 왕창 해 먹고도 집행 유예로 풀려 날 것이라 했다.

  이곳에서도 재력은 그 위력을 발하고 있었다. 수감자들도 영치금이 있으면 기름진 음식을 제공 받았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돈이 필요하겠지만 다 같이 죄 지은 처지인데 여기서까지 빈부 차이가 나타나다니......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말했다. '죄질은 가벼우나 전과가 많으니 상습 절도범이므로 세상으로 부터 격리 할 필요를 느꼈다.'고 했다.

  이 사회 모두가 공범자가 아니라 어찌 말 할 것인가? 그에게 죄를 부여한 재판관들 까지도......

  죄의 소굴로 등을 떠밀고 그 죄로 인해 12년의 격리라니!

  어처구니없는 현실에서 '호주끼'는 좌절하면서도 '청송 감호소'가 어떤 곳인지 한 번 가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절규한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환갑을 맞은 그가 노구를 이끌고 그 곳 청송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가는 도중 병을 얻어 인생의 종말을 고하는 한 인간의 주검 옆에는 유품으로 검은 고무신 한 켤레와 질 낮은 두루마리 화장지가 고작이었다.

  이 길은 빈손의 '호주끼'나 , 부동산을 잔뜩 가진 투기꾼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냥 그렇게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니던가?

  많이 갖겠다고 아귀다툼 하며 살아온 우리네들 인생살이에서 잠시나마 뒤를 돌아보게 했다.

  이 영화는 권력과 부의 노예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배불리 먹고 흥청망청 써 버릴 때, 굶주린 이웃도 생각 했어야 했다

  '중광'스님의 연기도 돋보였으며 폐쇄된 공간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밝게 유머러스하게 살아가는 '호주끼'의 인생은 마음을 비운 고차원의 삶이 아닐까 생각된다.

  청송감호소에서 보호감호를 받고 있는 죄수들은 정말 구제 못할 격리 하지않으면 안될 인간들인가?

  이 사회에는 그들 못지않은 죄인도 많지 않을까?

  이들을 죄 짓게 만든 환경은 그들의 탓일까?

많은 의문점을 던져주는 이 영화는 교도소라는 폐쇄된 공간의 조명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한 내용이며 퇴폐. 향락. 무질서. 과소비. 등 물질 만능에 병든 이 사회 현실이 낳은 범죄자 '호주끼'를 통해 참 생의 의미를 표명하려는 작품이라 본다.

  죽음 앞에선 누구나 빈손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었다.

  여기서 교도소장의 따뜻한 인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호주끼에게 회갑 상을 차려 주었으며 한 많은 한 인간의 죽음을 엄숙하게 장례 지내주었다. 이와 같이 모든 교도관이 따뜻한 온정을 베푼다면, 많은 죄수들이 교화되지 않을까?

  이 영화를 통해 이 겨울 춥고 배고픈 이웃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