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

전쟁이 남긴 교훈

류귀숙 2011. 7. 2. 08:10

1993년 10월9일 상영      제목: 하얀 전쟁

      1994년 1월15일 대구 국제 영화제 감상문 부문: 우수상 수상

 

               전쟁이 남긴 교훈

내가 중학교 때의 일이다.

'맹호부대. 백마부대의 군가를 목청껏 불러대며 파병 장병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또 평화의 사도로써 베트남전에 우리 국군이 참전했음을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종전 후 베트남 난민의 처참한 소식을 접하곤 또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모른다.  그 많은 수고와 희생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나 까맣게 잊혀진  그때의 일들이 한 페이지의 이야깃거리로 남아 눈앞에 나타났다.  묻혀진 그 이야기들이, 소용돌 쳤던 순간들이"하얀 전쟁"이라는 한 편의 영화를 통해 하얗게 되살아났다.

강대국의 이념과 이익 다툼에 희생된 베트남! 그 베트남전쟁이 우리가 알고 있었던 상식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에서 재조명된 점에서 이 영화의 가치는 높이 평가되기에 족했다

40년 전 우리가 겪었던 6.25와 맞물리면서 강대국의 이념 싸움에 희생양이 되었던 우리의 처지와 너무나 닮았다. 그래서  베트남의 불행은 지나쳐 버리기엔 엄청난 비중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까 전후 20년이 다 된 오늘날 그 전쟁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다.

우리의 피 끓는 청년들은 여러 이유로 베트남의 정글로 파병됐다. 어떤 이는 돈을 벌기 위해, 또 어떤 이는 장엄한 전쟁을 체험해 보고픈 영웅 심리 때문에 정글로 향했다.

많은 파월 장병 중 소설가 한기주 병장이 소속된 소대원들을 통해 전쟁의 많은 문제점을 조명한 이 영화는 인간의 욕망과 잔인성, 그리고 허무와 폐허가 잘 그려져 있었다..

파월 용사였던 한기주 병장의 독신 아파트는  낡고 음침한 데다 지저분하여 황량하기까지 했다. 거기서 술 마시고 라면 끓여 먹으며 쇠락해 가는 한 인간을 클로즈업 시켰다. 이 영화는 오늘을 안일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전쟁의 희생물인 한병장과 변일병 두 인물을 적절히 대비시켜 가며 스토리를 끌어가고 있었다.  강대국의 발밑에 밟힌 한 미약한 인간이 겪는 고통을 보여 줌으로써 찡한 감동을 느끼게 했다

우리의 청년들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참전 했으나 곧 무료함에 싫증이 났다. 그들은  한바탕 장렬한 전쟁을 치르고픈 호기심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 그러던 중 소를 베트콩으로 오인하여 한바탕 난리를 치른 일이나 월남 양민을 베트콩으로 착각하고 사살한 일들은 전쟁이 가져다준 횡포가 아닐까 한다.

평화를 지키려 찾아온 병사의 양민 학살 행위와 파괴의 행위는 묘한 아이러니다.

베트남의 한 노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여러 나라의 병사들이 평화를 지키려 이 땅에 왔지만 다 소용없으니 돌아가라"고

정말 맞는 말이다.

베트남전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 주체는 누구인가? 엄청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는 누가 책임 질 것인가?

전쟁을 통해 이념의 장벽을 넘나든다든지  아니면 평화를가져다주겠다는 이야기는 핑계요,  명분일 뿐 진정한 평화와 행복은 전쟁을 없애는 것이 아닐까.

파월 장병들 주위를 돌며 구걸하는 베트남의 아이들 위에 6.25 당시 미군 찝차를 따라가 초콜릿을 구걸하던 우리의 어린 시절이 오버랩 되면서 잊혀졌던 과거의 불행이 되살아 났다. 또 돈을 벌기 위해 술집에서 全裸(전라)의 몸으로 춤추는 베트남 아가씨도 아픔이고,  미군 앞에서 춤추는 김하사 동생 영옥이도 아픔이다.

귀국 날짜가 가까워지자 모은 돈으로 고국에서 할 일을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하는 이들의 평화위에 마지막 불꽃 튀기는 접전의 날이 다가 오고야 말았다.

격렬한 포성과 함께 이들 소대원의 꽃다운 젊음이 산화 됐다.  생존자는 3명 뿐 이들에게 총알받이를 강요 했던 상급 부대는 희생자들에게 용감히 싸운 대가로 훈장을 내리겠단다.

"죽은 후에 훈장이 무슨 소용이냐"고 울부짖는 생존 병사의 절규는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전우의 주검 앞에선 '한기주'와 변진수'의 충격에서 생존자들에게 드리운 죽음을 본다.

귀국한 뒤 이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죽은 자의 그것을 훨씬 넘었으니까.....

'변진수일병'은 심한 정신 착란증 증세를 보이며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큰 소리만 나도 베트남의 정글을 헤매는 악몽에 시달린다. 또 그 때마다 김하사의 행동은 난폭해진다.   그의 강요로 살해된 양민의 모습이 떠오르고  전과를 올리기 위해 양민의 귀를 자른 모습도 생각났다. 그는  잠재한 죄의식 때문에 자신의 귀를 자르기 까지 한다.

한 병장 또한 성 불구자가 되어 아내와 자식을 포기하고 쇠락의 구렁텅이로 빠져 가고 있었다.

허무에 빠진 한병장은 잊을 수 없는 그 때 일들을 잊혀진 자 들의 가슴에 심어 주고자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이 연재되고  생존자 변일병을 만났으나 그가 제 정신이 아님을 보고는 괴로워 소설 쓰기를 중단한다.

산 자의 주위를 맴도는 먼저 간 전우의 영들에게 쫓기는 변일병은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기주는 변일병의 안식을 위해 그를 살해 한다. 변일병의 주검 옆에 나란히 누운 한기주. 이 둘의 얼굴에 평화가 깃든다.

한기주는 말한다."이제 소설을 쓰겠노라"고

많은 것을 시사해 준 이 영화는 현지 촬영으로 더욱 생동감이 넘쳤고,  한국 영화의 수준을 한층 올려 주었다.

한국 영화의 무궁한 발전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