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버지의 자리

류귀숙 2014. 12. 17. 20:37

     아버지의 자리

 펄펄 끓어 넘치던 열기도, 따가운 가을 햇살도, 세월 저편으로 물러가 버렸다. 남은 건 한 줌 정도의 온기를 품은 가녀린 햇살이다.

 점점 더 기세를 더해가는 겨울바람과 포근한 겨울 햇살이 만나는 저수지 둔덕에서 중년의 아버지가 연을 날리고 있다. 겨울 햇살을 등으로 받으며 중년의 아버지는 아이 둘을 데리고 연을 날린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어린시절의 추억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나 보다. 

 연은 이내 아버지의 손을 떠나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바람까지 힘을 보태주니 연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구친다. 아버지는 쉼 없이 얼레를 당기며 연의 높이를 조정하고 있다. 혹시 연줄이 끊어지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저수지 둑 위에서 연줄을 잡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내 아버지를 비춰 본다. 아슬아슬한 연줄처럼 벼랑을 오르듯 살얼음을 밟듯 살아왔던 이 땅의 아버지들이 머리 속에서 맴을 돈다.

 내 어릴 적 솜씨 좋은 아버지는 태극무늬로 장식된 방패연과 고운 색으로 물들인 가오리연을 만들어 주셨다. 겨울 추위도 잊은 채 연을 들고 남동생과 같이 사내아이처럼 들판을 누볐다. 마침 가을 추수가 끝난 들판은 비어 있었다. 이때는 계단식 논이 연날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가장 높은 논에서 부터 아래로 뛰어내리면서 연줄을 풀어주면 연이 내 머리위로 솟구쳐 올랐다. 때 맞춰 바람을 맞은 연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면 얼레로 연 줄을 조종했다.

 그때 그 연을 만들어 주셨던 아버지가 오늘따라 진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때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이 힘든 시대를 살았다. 격동의 시기를 겪을 때에도 깃털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학처럼 꼿꼿하게 사셨던 아버지들이다. 그때의 아버지들은 적막한 빈 들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연의 기상을  간직하고 살았다.

 오늘 그 험난한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혼신의 힘을 쏟았던 한 아버지의 생애를 접하게 됐다.

 친구와 함께 "국제시장"이란 영화 속에서 유년의 아버지를 찾아내고는 눈물을 찍어냈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진 아군은 남쪽으로 철수하게 됐다. 그때 함경남도 흥남 부두에서 철수하는 군인을 따라 피난길에 올랐던 한 어린 가장의 이야기다.

 큰 군함에 열 살이 조금 넘은 남자 아이가 여동생을 등에 업고 오르기는 불가능 했다. 승선 도중 동생이 바닷물에 빠지게 됐고, 아버지는 딸을 찾겠다고 되돌아갔다. 가면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넌 이 집안의 가장임을 잊지마라. 국제시장의 '꽃분이' 가게가 고모집이니 거기서 다시 만나자.'라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면서 어린 소년이 가장이 됐다. 소년은 어린 동생 둘과 어머니라는 가족의 짐을 지고 폭풍 속을 헤쳐 나갔다.

 어린 시절엔 구두닦이와 부산 부두에서 잡일을 하며 동생과 어머니를 지켰다. 청년이 돼서는 동생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독 광부가 됐다. 칠흙 같은 어둠을 밝히는 건 이마에 붙인 반딧불만한 랜턴이 전부였다. 그들은 땅 속 깊은 막장에서 검은 탄가루를 뒤집어쓰고 두더지가 되어 돈을 벌었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 20대의 꿈 많던 소년은 그 꿈을 막장 안에 묻어야했다.

 폭풍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소년은 힘든 고비를 잘도 이겨냈다. 오로지 돈을 벌어 가족을 잘 살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죽음의 고비도 참고 견뎠다. 무너진 막장 안에서 생사를 넘나들었다. 이 장면에서는 나의 아버지인 듯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고국에 돌아와서도 자신을 위해 공부하려던 꿈을 또다시 접어야했다. 자신의 꿈인 선장이 되기  위해 주경야독으로 공부해서 대망의 해양 대학에 합격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전보다 더 버거웠다. 처와 자식까지 생기고 보니 더 한층 무거워진 짐 때문에  월남전의 화마 속으로 뛰어들게 됐다.

 그는 목숨의 위협이 닥칠 때마다 가족 생각으로 힘을 얻었고 또 가족이 굴레가 됐다. 시시 때때로 다가오는 태산준령을 태산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넘어갔다.

 자신에게 남은 건 꿈이 사라진 빈 껍데기였다. 오직 부산 국제시장에 자리한 '꽃분이' 가게만이 자신의 몫이 됐다.

 이 아버지에게도 세월은 비켜가질 않았다. 부상 당한 다리는 힘이 빠지고 머리엔 이미 흰 눈이 내려앉았다. 훌쩍 자란 아이들은 초라한 가게를 지키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구닥다리 고집불통 아버지라며 불만을 내 비쳤다. 재개발에 동의하면 보상받아 편히 살 텐데 왠 고집이냐고 아우성이다.

 말 없는 아버지의 가슴엔 자신의 아버지를 기다리는 꿈이 있었다. 언젠가 찾아오실 아버지가 낯설지 않게 그 옛날의 '꽃분이'가게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들이 어찌 아버지의 깊은 뜻을 알 수 있겠나!

  아버지의 텅 빈 가슴엔 허무가 들어앉았고 늙은 육신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아버지의 자리는 희생의 자리요, 책임의 자리다.

 우리의 할아버지 때는 일제 말의 격동기에 이어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로 가난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던 세대다. 또 아버지 세대는 밤잠을 설치며 노력해서 경제를 끌어올려 밥걱정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 아들 세대는 비빌 언덕과 바람막이 덕택에 비교적 수월하게 살게 됐다. 그러나 경제는 또 다시 만만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만 노력한다고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구촌 시대가 되고 부터는 예상치 못한 외국 폭풍까지 불어 닥쳐 I M F를 맞았다. 이 때문에 우리의 아버지들이 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이젠 예비 아버지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아버지의 자리에 앉지도 못하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버거운 짐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 짐을 부담으로 느끼는 젊은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급기야 아버지의 자리를 포기하고 혼자 살겠다는 젊은이들이 꽤 넓은 영역을 차지한다니 걱정이다.

 이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우리 사회가, 기성 세대들이 나서서 언덕이 돼 줘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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