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벼랑에서 길을 찾다

류귀숙 2015. 3. 9. 17:23

   벼랑에서 길을 찾다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 봐야겠어요." "아주 큰 덩어리가 잡혀요." 의사가 말했다.

 남편이 퇴직을 한 달 앞두고 대장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건강이라면 코브라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다니며 병약한 자들의 속을 긁어댔다. 그런데 오늘 내가 들은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평소 건강하던 남편이기에 검사실에 밀어 넣고도 태연히 T. V만 보고 있었다.

 의사는 대장 내시경 영상을 보여주며 큰 병원에 가야한다고 말했다.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백지가 됐다.

 "왜 진작 검사를 안 받았소. 작년에만 왔어도 화를 면할 수 있었는데." 큰 병원 의사의 말이다. 갈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나에게 의사는 속히 암센터에 등록하고 수술 날짜를 잡으라고 했다.

 꼭 꿈을 꾸는 것 같고, 사기를 당한 것 같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아마 오진일 거야.'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생각들은 후회와 뒤범벅이 되어 가슴을 훑는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단 말인가! 1년 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는가!

 남편은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고 벼랑 끝에 섰다. 난 정신을 차리고 벼랑에서 추락하지 않게 디딤돌이 돼야 한다.

 가장 먼저 대장암이라는 불청객을 맞아들여야 한다. 이제 그 손님과는 함께하며 으르고 또 꾸짖으며 장기전을 벌이는 일 뿐이다.

 수술 날이 3일 앞으로 다가오자 속을 비우고 최종 검사에 들어갔다. 구절양장 같이 긴 대장 속이 낱낱이 화면에 비쳐졌다. 큰 암 덩어리 외에도 크고 작은 용종들이 풀잎에 이슬 맺히듯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그동안 남편 내조를 잘못한 죄가 용종이 되어 알알이 박혀있는 것 같다. 용종을 가장 먼저 떼어 내고 그 다음에 대장을 잘라 암 덩이를 제거한단다.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일은 의사를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 밖에는 없다. 목사님을 비롯한 교우들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급보를 받고 달려온 언니에게도 기도실에 들어가 철야 기도를 해 달라고 했다.

수술 날 아침 흰 천을 깐 침대가 들어왔다. 눈앞에는 흰 천으로 환자를 덮어씌운 화면이 오버랩 되면서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마침 목사님이 오셔서 남편의 손을 잡고 힘차게 기도하셨다. 목사님의 기도가 위로가 되어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솟아났다. 남편의 손에 하이파이브를 하며 잘 해 보자고 용기를 주었다.

 수술하는 4시간은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입술은 타 들어가고 머릿속은 멍하니 생각을 잃어갔다. 전광판에서는 수술 중이라는 멘트만 날려댔다.

 간신히 수술을 마친 남편을 중환자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핏기 없는 파리한 얼굴은 보기조차도 민망했다.

 

 암이란 정말 여느 병보다 급수가 높은 병중의 병이다. 수술하고 암 덩이를 제거했다고 끝이 아니다. 시시 때때로 재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이 항암치료는 수술보다 더 무섭다. 암을 죽이기 위해 투입된 독한 약은 암세포와 함께 정상 세포도 죽이게 된다. 이  때문에 온 몸은 전쟁터처럼 폐허가 된다. 그러므로 시도 때도 없이 환자를 벼랑으로 몰아간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은 기본이고, 온 몸이 감전된 듯 찌릿찌릿하고, 입맛이 떨어지고, 손발의 감각이 마비된다.

 손이 둔해 단추를 잠글 수 없고, 수저질도 힘 든다. 발 감각이 없어 신발을 신었는지 벗었는지도 모르고, 요철이 심한 도로에선 넘어지기 일쑤다. 

 이때부터 난 남편과 같이 걸을 때면 팔짱을 끼는 버릇이 생겼다. 속도 모르는 사람들은 부러움 반 놀림 반으로 '잉꼬부부'라고 했다. 남편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말은 안 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검은 비닐에 싸인 항암치료 약이 섬쩍지근하다. 독한 주사약을 남편의 혈관에 찔러대던 때가 떠올라 몸서리쳐질 때도 있다. 또 가끔은 암환자들의 항암치료 병실이 떠오른다. 손목엔 고유 넘버가 찍힌 팔찌를 수갑처럼 차고 팔은 결박당한 채 죄수처럼 꼼짝을 못하고 누워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벼랑 끝에서 허우적대던 시간들도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을….

 참 감사한 일이다. 3년 전 그때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그 파리했던 얼굴이 이젠 청년처럼 싱그럽다.

 벼랑을 조심스럽게 딛고 오솔 길을 찾은 남편은 덤으로 받은 시간들을 봉사하며 살기로 마음 먹었다. 대구시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금빛 봉사단'과 연금 공단에서 운영하는 '상록 봉사단'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로 했다. 

 남편은 소년원의 소외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자원했다. 소년원에 수감된 자 중에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대입 검정고시를 통해 진학하려는 원생들이 많이 있단다. 남편은 이들의 고시 준비를 도우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또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이들도 사회 약자로 보살펴야할 대상이다. 남편은 복지관에서 이들에게 하루속히 정착하도록 도우고 있다. 참고 견디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남편의 몸과 마음에 봄이 돌아왔다.

마음엔 감사가 넘치고, 생명의 소중함을 나누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남편의 길라잡이가 되었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얼었던 가슴이 녹아내리는 걸 보니 잘못 보필한 죄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다.

 화사한 봄볕을 받으며 봉사 길에 나서는 남편이 자랑스럽다.

 우리 부부는 내일의 태양을 향해 과감히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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