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치과에 가면

류귀숙 2015. 3. 17. 17:56

         치과에 가면

가슴은 사시나무가 되어 후들거리고 다리는 취한 듯 비척거린다. 간호사의 입으로 불리어진 내 이름 석 자가 허공을 맴돈다. 저승사자 앞에 서듯 체념상태로 큰 칼을 뒤집어쓴다.

 그 의자에만 앉으면 큰 칼 쓴 죄수처럼 온 몸이 옥죄어 들다가 차츰 돌덩이처럼 굳어간다. 이 때 머리위에선 불빛이 번쩍 한다. 곧이어 입이 벌어지고 몸은 죄인처럼 결박당한다. 가슴은 바들바들 떠는 새가슴이 되어 의사의 지시를 따른다. 웃을 때보다도, 먹을 때보다도 한껏 벌린 입이 찢어질 것 같다. 눈을 질끈 감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다.

 마음 속 염원은 오직 한 가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이다. '아얏'소리조차 할 수 없는 입 속은 금방 보수 공사장이 된다. 요란한 전기 드릴 소리는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잡아채서는 공포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다.

 마취 바늘로 찔린 잇몸으로 파고드는 쓴 물은 목구멍을 위협하고 있다. 또 드릴로 뚫린 구멍 속에서는 송곳으로 찔린 듯한 고문을 감당해야한다.  잇속의 신경이 아픔을 호소하며 창자까지도 뽑아 올릴 것 같다.

 침을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니 목구멍에다 바리케이드를 쳐 본다. 온 신경을 목구멍으로 보냈더니 이젠 숨쉬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 순간은 차라리 죽었다 깨어났으면 좋겠다.'

 병원에 가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난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 따라서 약 먹는 것도 싫어한다. 심지어 건강식품까지도 약이라는 생각에 먹기를 꺼린다.

 초등학교 때라고 기억된다. 어느 겨울 감기가 심하게 걸렸다. 아버지께서 면소재지에 있는 약국에 가셔서 약을 지어 오셨다. 낌새를 챈 나는 잽싸게 고샅을 향해 달렸다. 추운 겨울이라 놀 친구도 없고, 날은 저물고 있어 콜록콜록 기침소리를 내며 서성거렸다. 이때를 놓치지 않은 아버지께 덜미가 잡혀 들어왔다. 거부하는 나를 완력으로 입을 벌리게 해서 입 속으로 약을 털어 넣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난 모든 걸 체념하고 물을 마셔 약을 넘기려 시도 했으나 번번이 약은 입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 불어 터진 마이신 캡슐에서 쓴 약이 입안을 강타했다. 급기야 토해내는 음식물과 함께 약들도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호랑이 같이 무서운 아버지는 극도로 분노했다. 호통소리가 산천을 울리는 듯했다.

 그때 그 쓴맛과 꼭 같은 쓴맛이 내 입속을 휩쓸고 다닌다. 결박당한 입으로는 뱉을 수 도 없는 상황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시간에게 이 위기를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60평생에 건강 검진과 치과에 간 일 외에는 병원에 간 적이 두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그 횟수가 적다. 감기가 걸려도 배탈이 나도 병원은 생각지도 않는다. 걸핏하면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남편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물론 아프다고 약을 사 먹는 일도 없다. 

 젊었을 때는 아이를 낳으려 병원에 간 적이 있지만 그 외는 병원 기록이 없다. 그러나 미루고 참아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감기나 배 아픈 것은 참다보면 낫게 되겠지만  이가 아픈 것은 그렇지 않다. 자칫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될 경우가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이 일만은 미련 부리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쓰고 있다. 마치 태산준령을 넘어가듯 그 길로 다가간다.

 나는 선천적으로 약한 치아를 타고났다. 거기다 단 것 좋아하는 식성까지 한 몫을 하니 상한 치아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양쪽 어금니를 합해서 8개를 임플란트를 해야겠어요." " 덮어씌운 것 2개는 좀 더 지켜봐야겠고, 땜질 한 것도 손을 봐야겠네요." 의사의 판결을 들으면서 내가 넘어야할 태산의 높이를 계수해 본다.

 옛날 같으면  합죽할미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이 상황을  벗어 날 수 있는 길이 있다지 않은가!

 '첨단 과학 기술의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라고 마음속으로 다져 본다.

 임플란트 8개를 약속하고 공사에 들어갔다. 발 치를 하고 두 달, 철골 지주를 세우고 두 달,  또 두 달이 지난 후 가식 이를 빼고 진짜 이를 해 넣는단다.

 한 쪽이 끝나면 또 다시 먼젓번과 같은 방법으로 남은 한 쪽을 시행해야 하니 그 기간은 1년을 훌쩍 넘는다.

 눈앞이 캄캄하다. 가장 먼저 턱뼈에 구멍을 내고 철골 지주를 세워야 하는데 이 일이 가장 힘 든다. 그 지주 위에 이를 해서 씌우는 작업이 바로 임플란트 시술이다.

 '장기간 동안 어찌 그 고통을 견뎌낼까.' 태산 같은 걱정을 안고 태산을 넘을 일이 꿈처럼 아득하다.

 내 몸에 최면을 걸어 본다. '할 수 있다.' '고통은 누르고 끝난 뒤를 생각하자.'

 이왕 이렇게 아픔 속에 있다면 용기를 가지고 생각을 바꿔 보기로 했다. 비록 입 속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지만 마음은 아직도 내 손아귀에 있지 않은가. 그럼 마음을 희망으로 몰고 가면 되지 않겠나.

 치료를 마친 뒤의 행복을 생각해 보자. 거기에는 고통 뒤에 오는 말끔한 입속이 기다릴 것이다. 젊은이 못지않은 치아로 고기든 딱딱한 것이든 씹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얼굴 윤곽도 변하지 않고 그 옛날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니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 아닌가!

 요즈음 내가 살고 있는 헌 아파트에선 집수리가 한창이다. 여기 저기서 드릴 소리가 나고 못 박는 소리가 시끄럽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그 집을 가보면 새집처럼 말끔히 수리 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사람의 신체도 헌 아파트처럼 보수할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 이 혜택을 누려야 하지 않겠나.

치과 보수를 시작으로 팔과 허리, 다리까지 삐꺽 소리를 내며 보수에 참여하려 한다.

 고통이 지나면 한층 더 행복한 삶이 기다린다는 진리를 진즉에 깨닫지 못하고 병원가기를 꺼려한 자신이 어리석었다. 인간의 몸을 수리하기 위해 평생을 연구한 의사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 뿐인가 정신 건강까지도 고쳐주는 의사가 있으니 몸도 마음도 이제 새로움을 얻는데 무리가 없다.

 인간 수명이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이 연장됐는가. 인간의 도전은 쉴 줄을 모른다. 나도 100세 시대를 살고 있으니 아마 100세는 살지 않겠나.

 의사는 오늘은 공사가 끝났으니 고여 있던 쓴 물을 뱉어도 좋다고 한다. 그 목소리는 구세주의 목소리다. 참고 견디니 마칠 때도 오는 것이다. 겁먹지 말고 희망을 바라며  참아 보자. 앞으로는 건강한 치아가 내 것이 될 테니까.

 또 다시 치과 의자에 앉아 입을 한껏 벌리고 공사장으로 내어 놓는다. 드릴 소리만 요란하게 울릴 뿐 아프다는 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그래도 이 순간만 넘기면 맛있는 점심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이젠 드릴 소리를 음악 소리로 바꾸고, 찢어질 듯 벌린 입도 노래하게 하자. 가슴엔 희망을 담고 미래를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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