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을 감사로
만족과 불만족을 양팔 저울에 달아본다면 어떨까? 아마 여러 가지 답이 나올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 다른 답을 품고 있을 테니까.
불만족 쪽으로 무게 중심을 잡고 그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사는 사람들을 보자. 그들은 불만이라는 곳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이들의 마음 밭에 욕심이 싹트고 부터는 불만과 불평이라는 친구도 찾아와 검은 숲을 이루고 있다. 이들이 열매 맺어 진가를 발휘하는 현장을 보면 가관이다. 금싸라기 같이 귀한 햇볕이 내리쬐면 덥다고 불평, 가뭄에 단비라도 내리면 우산 쓰기 싫고 칙칙하다고 불평, 성공한 지인을 보면 잘난 체하는 게 꼴사납다고 불평, 실패한 친구는 복 없는 사람이라 같이하기 싫다고 불평이다.
이들은 고개 돌려 보이는 모든 것에 불평을 쏟아붓는다. 정치를 돌아봐도 불평, 사회 구조도 불평, 힘없고 작은 나라라고 불평, 못 배우고 가난한 부모라고 불평, 똑똑하지 못한 자녀라 불평, 이 불평들을 점수로 따진다면 100점 만점에 100점일 것이다. 고득점을 한 이들은 성적 우수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얼굴부터 표가 난다. 웃음이 가셔버린 메마른 얼굴은 스케치한 연필 자국 같은 선들이 내 천자나 여덟팔자를 만들고 있다.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던 작은 미소조차도 불평에 의해 밀려 나고 그 속을 불안과 초조, 미움이 자리 잡고 있으니 항상 우울하다. 물론 천진한 웃음이 아름답던 입술도 조소를 흘리는 입술로 변해버렸다.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그레샴'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軀逐)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을 발표했다. 이는 합금으로 만든 질 떨어진 금화가 고품질의 금화를 몰아내어 온 세상에 악화가 채워지게 된다는 법칙이다.
갑자기 이 경제학 이론이 불만과 불평이 만연한 이 사회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즉 불평, 불만이 감사, 사랑 ,양보, 용서 등과 같은 선한 마음을 몰아낸다는 것이다. 불만 점수가 높은 사람이 내 가족, 내 친구, 내 직장 등 내가 속한 동아리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가 뱉은 불평의 말 한마디, 빗나간 시선, 찡그린 얼굴들이 나에게 전염되지 않겠나?
내가 활동하는 공간이나 내가 걷고 있는 시간 속에 불평이라는 검은 씨앗이 싹트고 자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연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작은 감사와 사랑과 행복을 모두 빼앗기게 될 것 같다.
우리나라 조선조에서도 정치인들이 가슴 가득 정귄 야욕을 품고, 이합집산을 서두르는 개미떼 같이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있었다.
연산군 때 '김정구'는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창파(滄波)에 좋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라는 시조를 지어 불평, 불만이 가득 찬 까마귀 같은 정치인들을 경계하라는 경고를 주었다.
시험 성적이 100점이라면 이보다 더 바랄 게 없겠지만 불평 점수는 ㅇ점(제로)가 가장 좋다. 나는 여기서 '역 그레샴의 법칙'을 정해보고 싶다. "감사는 불평을 구축한다."라는 법칙으로 불평을 몰아내고 자 한다. "불평을 하지 맙시다." 불평을 제로로 만듭시다."이런 구호는 너무 약하다고 생각한다. 한 단계 강화시켜 "감사로 불평을 몰아냅시다."로 바꾸고 다음 단계로 실천에 옮겨보는 거다.
얼핏 보기엔 이 땅 위에 어둠만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바알 신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의 용사를 남겨 두었듯이 현 시점에서도 남은 그루터기가 있고, 한 줄기 빛이 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가르침만 붙들고 나가면 모든 선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난 일단 불평을 제로선 상에 두고 감사의 마음으로 기초를 다져 본다. 그렇게 하면 그 뒤를 이어 만족이, 기쁨이, 행복이 꼬리 물기로 따라 나설 테니까.
연약한 인간의 주위에 널려 있는 불평의 요소들을 피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야 한다. 먼저 이해의 마음을 가지고 그 다음은 감사의 마음으로 기초를 다져보는 거다.
시작은 가정이다. 내 가정에서 먼저 감사의 불씨를 당겨 보자. 자신의 물건도 정리하지 않고 쓰레기장처럼 어질러 놓은 남편과 자식의 방을 보고 불평을 꾹 누른다. 그리고는 감사를 끄집어낸다. '가족이 있어 감사합니다.'하고 감사의 돌 하나를 디딤돌로 삼는다. 인생길에서 당하는 어려운 일 앞에서도 '이만하길 다행입니다.'하고 또 한 개의 감사 돌을 쌓아 올린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는 '오죽하면 그랬을까.'하고 이해와 용서의 돌을 각각 포갠다.
이렇게 내 마음에서 출발한 감사의 불씨가 내 가정을 시발점으로 이웃과 사회로 퍼져나갈 것이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던 그 함성의 물결처럼 감사와 용서와 사랑의 물결이 온 세상을 덮게 될 것이다.
여기서 '역 그레샴의 법칙'이 빛을 발하게 되어 "감사는 불평을 구축한다."는 새로운 법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곳곳에 감사는 널려 있다. 불평을 몰아낸다면 그 곳에는 감사가 자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지 수선을 맡겼는데 약속을 3번이나 어기고 헛걸음을 시킨 수선 집을 향해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일단 불평을 제로에 올려놓고 얼굴엔 미소를 지으며 '많이 바쁘신가 보죠? 솜씨가 좋으니 일거리가 많아 대박 나겠어요.' 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미소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발걸음은 따지고 나무라며 승리를 맛보던 때보다도 더욱 더 가벼웠다.
시각만 바꾸고 마음만 조금 돌려놓으면 불평, 불만의 나쁜 그림자를 몰아내는 게 어렵지가 않다. 이런 세상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아니겠는가?
*창파: 큰 바다의 맑고 푸른 물결 *새오나니: 시기하나니 *좋이: 정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