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고무신

류귀숙 2015. 5. 24. 08:46

       고무신

 너덜너덜 헤진 운동화를 끌며 가고 있다. 어깨에 실린 우주를 버겁게 메고 세계의 끝을 향해 걷고 있다.

 빛바랜 갈대는 나보다 먼저 걸어가고 있다. 희미한 발자국도 나를 바싹 쫓는다.

 멕시코 사람들은 누군가가 죽으면 그가 신던 신을 땅이 아닌 빈 하늘에 묻는다고 한다. 그리 높지 않은 전기 줄에다 살아가는 슬픔을 투척하듯이 신발을 거는 의식을 한다고 한다.

 우리와는 좀 생소한 풍경이다. 우리풍습은 세상을 떠날 때 신발을 나란히 벗어놓고 떠난다. 유족들은 죽은 사람의 신발을 대문 앞에 사자(使者)밥과 함께 내 놓는다. 신발은 저승길 떠날 때 신고 가라는 뜻이고, 사자(使者)밥은 저승사자를 달래서 사자(死者)에게 도움을 주라는 뇌물인 셈이다. 

 어쨌든 신발은 그 사람의 사후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물건이다. 옛 사람들은 인생 여정에서 함께했던 신발이니 사후에도 함께 할 것이라 믿었다.

 문득 현관에 놓인 운동화 한 켤레를 내려다본다. 예쁜 꿈 가득 싣고 힘차게 출발했건만 이제는 지쳐 남루로 누워있다. 하고 많은 세월이 한 움큼 빠져나간 자리가 보인다. 이제 아내와 엄마의 지친 끈 풀고 내 작은 보금자리에서 쉬고 싶다.

 내 낡은 운동화 옆에서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달빛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보름밤이었다. 그때 댓돌 위에서 하얗게 빛나던 어머니의 하얀 고무신을 잊을 수 없다. 가지런히 누워서 사랑 가득 담은 눈빛으로 집안을 지키던 모습이다.

 새하얀 고무신이 누리딩딩하게 변할 때까지 어머니는 동당거리셨다. 작은 몸집으로 꿀벌처럼 가볍게  온 집안을 날아다니셨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내 어릴 적 여름날을 한조각 베어 본다. 어머니는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셨다. 나도 엄마 치마꼬리 붙들고 줄래줄래 따라 나섰다. 보리쌀을 자배기에 담고 공동 우물가로 한걸음에 가셨다. 나는 샘가에 앉아서 어머니의 보리쌀 씻는 소리와 물질하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열었다.

 그 시절엔 나도 어머니도 고무신을 신었다. 고무신의 추억은 어린 날의 수채화로 남아있다.

 여름날의 고무신은 수륙 양용이었다. 비가 오면 장화가 됐고, 맑은 날엔 땀에 젖지 않는 고급 신발이 됐다. 또 물고기를 잡으면 신발에 담아 두었고, 예쁜 조약돌이나 조개를 주워도 신발에 담았다. 그러니까 신발이 그릇 역할을 한 셈이다. 장난감이 귀하던 시절이라 어린 아이들은 신발 한 짝을 반대로 휘게 구부려 다른 짝 신발 안에 넣어서 즉석 장난감을 만들었다. 여기다 모래를 싣고 나뭇잎이나 꽃잎을 실어 배처럼 물에 띄우고 놀았다.  모래밭에서는 자동차로 변해 자동차 경기에 이용됐다. 이렇게 고무신의 용도는 다양했다.

 아카시아 피는 오월에는 고무신을 던져 올려 꽃을 땄다. 꽃 속의 꿀을 빨아먹었을 때의 단맛이 입안에 맴돈다. 가을에는 노란 은행잎을 향해 고무신을 던져 올리면 노란 은행 알이 떨어져 내렸다. 이 때 아이들은 고무신과 함께 꿈과 소망도 던져 올렸다.

 고무신도 여러 종류다. 남자용은 지금의 실내화 비슷하게 펑퍼짐한 모양이고, 여자 것은 버선코를 닮은 코고무신과 남자신과 비슷하면서 나비 모양을 장식한 신발이 있었다. 색깔은 흰 것과 검은 것이 있었는데, 검정 고무신은 흰 고무신 보다 예쁘진 않지만 질기고 값도 쌌다. 특히 여자 어린이 신발은 다양한 색깔에 꽃무늬가 있는 것도 있었다.

 나는 검정 고무신을 신지 않겠다고 몽니를 부렸다. 꽃신을 사주지 않으면 맨발로 다니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겨우 꽃무늬의 예쁜 코고무신을  신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검정 고무신만큼 오래 신을 것을 다짐 받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꽃신은 나에게로 와서 보물 1호가 됐다. 외출해서 돌아오면 선반에 올려놓고  집에서는 헌 신을 신고 다니면서 무척 아꼈다.

 이런 추억으로 고무신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됐다. 특히 어머니의 하얀 고무신은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머니의 인생 여정이 내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늘 방망이질하는 가슴 보듬으며 살아왔던 어머니의 발자국이 나를 인도하는 것 같다. 험한 세상 살면서 이리 막고 저리 덮으며, 외로움과 고통을 누르며 살아온  어머니의 자취가 우러러 보인다.

 남은 세상길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길도 어머니의 발자국만 따라 갈 것이다.

 삶이란 그저 흐르는 것. 내가 머무르고 싶다고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안다. 머무나 떠나나 그 또한 삶인 것을….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씻은 고무신을 신고 외줄 타듯 걸어갔던 그 길을 나도 따라 간다. 시궁창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조심해서 간다.

 아무리 애를 써도 회오리를 만나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네 인생 아닌가? 때로는 쉬어 갈 때도 에둘러 갈 때도 있다. 이때는 뒤를 돌아보자. 아무렇게나 살았던 세월이 없었는지 점검을 해 보는 게 좋겠다. 순간 내가 떠난 뒤라도 내 남긴 발자취가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고개를 치켜든다.

 머리숱 빠지듯 한 움큼 빠져 나간 세월을 증언이라도 하듯 나의 낡은 운동화가 현관을 지키고 있다.

 웃자란 신발들은 하나 둘 떠났다. 이빨 빠지듯 빠져 나간 신장을 열어 본다. 내 인생 여정에 동행했던 여러 종류의 신발들. 그 중에는 푸른 날 함께했던 굽 높은 구두도 있고, 멋 내기에 동참했던 부츠도 있다. 이제 그들을 구석으로 몰아 부치고 편한 운동화만 중심에 놓아둔다. 그 운동화 옆에는 어머니의 빛나던 하얀 고무신도 함께 놓인다.

 육십년 그림자 이끌고 걸어야할 남은 길을 계수해 본다.

 이 밤이 지나면 여명과 함께 하루를 열겠지. 어머니의 고무신 뒤를 낡은 운동화 신고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15.06.01
내가 가보고 싶은 곳  (0) 2015.05.28
불만을 감사로  (0) 2015.05.18
간 고등어  (0) 2015.05.15
미장원에 앉아서  (0) 2015.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