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
T. V를 켜니 이 채널 저 채널에서 말들이 거품을 물고 나타난다. 손가락을 곧추 세우고 원망을 퍼질러 댄다. 지도급 인사들이 국민 앞에서 정부를 성토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다.
그 내용의 핵심은 '중동 호흡기 증후군(메르스)가 이 땅에 들어왔는데 초기 대처를 못했단다. 전염성이 강한 '메르스' 보균자를 관리하지 못했고, 입원한 병원도 공개하지 않아 일파만파로 퍼졌다고 한다.
입가진 자들은 모두 입 모아 나무란다. "왜 최초 환자를 잘못 관리했느냐?" "왜 메르스 환자를 치료했던 병원을 공개하지 않았나?" "국민의 건강을 이렇게 소홀히 해도 되느냐?" "정부가 있기라도 하는 것인가?"
손에 채찍을 들고 난타 또 난타다. 여기저기서 때리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린다.
질책하는 자는 신이 났다. 불안해 허둥대는 국민들의 모습이 통쾌한 모양이다. 이런 일을 기다렸다는 듯이, 화제가 궁하던 판에 잘 됐다는 듯이 말을 쏟아 붓는다.
임진왜란이 터지고 임금과 신하들이 갈 바를 몰라 허둥대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 와중에서도 몽진을 가야 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의견이 분분했다. 어리석고 겁 많은 임금은 백성을 뒤로 한 채 몽진을 선택했다. 이를 백성들이 모를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겠는가!
위기를 모면하려고 몽진을 떠나는 임금님과 분노한 백성들이 팽팽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급기야 분노한 백성들은 이성을 잃고 경복궁에 불을 지르게 됐다.
T. V에선 연일 확진 환자 수가 늘어났다고 생생한 목소리로 겁에 질린 백성들을 자극하고 있다. 관리 대상자는 눈덩이 불어나듯,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러다간 문 밖 출입도 못하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모두가 초기 대응이 잘 못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메르스에 감염된 첫 환자를 철저하게 관리하지 못한 실수가 수면 위를 떠돈다.
임진왜란도 통신사 황윤길이 보고한 '일본은 침략 준비를 하고 있다.'를 채택했어야 했다. 그러나 임금은 '전쟁 위험이 전혀 없다.' 는 김성일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어쨌든 처음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 속담에도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는 속담이 있어 처음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T. V채널 모두를 '메르스'라는 녀석이 점령하고부터는 T. V 켜기도 불안하다. 모두가 채찍을 들고 설쳐대니 이유 없이 짜증만 난다. 차라리 이럴 때는 외출해서 운동으로 심신을 단련하는 게 낫겠다 싶다.
외출 하려고 거울을 본다. 머리를 빗고, 얼굴을 매만지고는 남방셔츠를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걸레 조각처럼 너덜대는 나를 진정시켜 주는 단추를 잠근다. 첫 단추를 먼저 끼우려고 단추를 단추 구멍에 맞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나 지난날 일어났던 큰일들은 모두가 이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일어났던 일이 아닌가! 첫 단추를 잘 끼워야만 두 번째 세 번째를 쉽게 끼울 수 있다. 허둥대다가 첫 단추를 다른 구멍에 잘 못 끼우면 어떻게 될까. 물론 삐뚤어진 옷이 되고, 타인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나.
언젠가 시간에 쫓기다 단추를 잘못 끼어 창피를 당한 적이 있다. 물론 지인이 발견하고 알려 주었다. 남에게 잘못을 지적당했을 때 얼마나 쑥스럽고 자존심이 상하는지…. 분명히 내가 잘 못했는데도 지적해 주는 사람이 야속하고 얄밉기도 했다.
지금 손가락질 받는 자나 손가락질 하는 자 모두가 첫 단추의 잘못을 두고 하는 말인 줄 안다. 그렇다고 잘못을 힐난만 하면 해결은 더욱 묘연해질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힘을 모아야 한다. 잘못 채워져 흐트러진 일들은 혼신을 다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물론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한다. 그렇다고 손가락질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지혜를 모아 수습하는 길을 찾는 것이 최선책이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풀어서 처음부터 다시 잠그면 된다. 겉잡을 수없이 퍼져버린 '메르스'도 질타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손가락질을 내게로 돌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자.
임진왜란으로 초토화된 이 땅을 구하려 의병이 일어났던 일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위기가 닥치면 뭉쳐서 헤쳐 나가는 힘이 타 민족보다 우수하다고 본다. 의분에 찬 백성들이 일어난 이상, 관이 손을 놓을 리 없다. 관과 민이 하나 되어 왜군을 이 땅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풍전등화 같던 우리나라가 승리의 개가를 불렀던 일은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지금 우리가 이 점을 본받아야 한다. 위기에서 관과 민이 하나 되어 왜적을 막아냈던 쾌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첫 단추의 잘못으로 7년이란 시간을 낭비한 일은 아쉽지만 어쨌든 길은 있는 것이다.
이번의 사태도 정부와 국민이 힘을 합치면 좋은 방법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 이 일이 교훈이 되어 앞으로는 재난이 닥쳐도 잘 대처하지 않겠나 싶다.
지도급 인사들은 중앙 정부 탓만 할 것이 아니라고 본다. 정부를 도와 일익을 담당하면 될 것 아닌가?
지방관들도 내 지역을 철저히 관리한다면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에는 괴질이 돌면 동네 앞을 장승과 동네 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지켰다. 그때는 정부만 해바라기 하지 않고 자신들의 고장은 자신들이 지켜나갔다.
지금의 환경이 어디 예전과 같겠냐만 그 정신만은 이어간다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다시 시작해 보자. 신발 끈을 조여매고 혼신을 다해 흐트러진 나를 세워보자. 손 놓고 앉아 있을 때 나무라며 달릴 수 있게 채찍을 치는 사람이 진정 참된 사람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종을 치며 채근하는 사람이 아쉬울 때다.
첫 단추를 정성껏 끼우고 둘, 셋, 넷, 다섯을 헤아리며 단추를 끼운다.
넘어졌을 때 손잡아 일으켜 주는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하며 흐트러진 나를 보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