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난 자리에는
올해는 추석 연휴가 4일이다. 어떤 해는 5일 또 어떤 해는 징검다리 한 칸만 건너뛰면 7일까지도 휴가를 즐길 수 있다. 빨간 불을 켜고 빨간 날들이 손짓한다. 이 날만은 가족들이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설 명절 때는 겨울철이라 야외활동이 제한되기 때문에 가을에 맞는 추석 연휴가 가장 소중하다. 애들이랑 가족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이때다. 날씨까지 서늘하게 한몫해 주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조상님의 산소들이 벌초를 재촉하며 발목을 잡고 늘어지기 때문에 이 꿈은 그림의 떡이 됐다. 왜 이 집안은 하필 추석 연휴 때 벌초를 하는 건지 불만 또 불만이다.
앞서서 깃대를 잡고 있는 장손이 추석 연휴라야 한단다. 어차피 부모님 뵈러 시골에 오는 김에 벌초까지 하자니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 몫이 된 부모님 산소만이라면 시간 날 때 미리 하든지, 벌초대행 업체에 맡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윗대 조상님들의 산소가 산지사방 흩어져 있으니 사촌 형제들이 모여야만 벌초가 가능하다.
옛날에는 왜 그렇게도 먼 곳에다 산소를 만들었는지 사방에 흩어진 조상 묘가 100 리 간격도 더 된다. 그 옛날 상여를 메고 갔을 것을 생각하니 당시 사람들의 무모한 욕심을 짐작할 수 있다. 명당자리를 찾아 먼 곳에다 유택을 마련했지만 후손들은 그 혜택을 보지 못하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뿐이다. 산소가 어찌 후손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인지 지금 상식으론 이해가 안 간다.
세월이 흘러가니 청년이었던 사촌들이 이미 백발이 됐고, 더러는 고인이 됐다. 또 해외로 이민 떠난 사촌도 있고 해서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 여기다 든든한 기둥이 받쳐줘야 하는데 아랫대는 아예 벌초에 관심이 없다. 물론 부모들 입장에서도 자식에게만은 벌초의 짐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 듯하다.
이 시점에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심지어는 이 산소가 어느 조상의 산소인지도 모른 채 벌초의 임무만 수행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작년까지 만해도 무성한 풀숲을 헤치며 벌초 대열에 참석했던 사촌형 역시 지금은 자연에서 안식하고 있다.
산소를 잘 돌봐야 효도이고, 조상을 기리는 일이며, 가문의 뿌리를 이어간다는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주검을 위해 울창한 숲들이 수난을 당했다. 공원묘지라는 이름으로 산 전체가 흉물스런 봉분으로 가득 차 있는 곳도 있다.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귀신이 나올까 봐 무섭다. 이 산 저산 양지바른 자리는 모두가 산소로 들어차 있다. 빽빽하던 숲은 이빨 빠진 듯 구멍이 숭숭 나 흉물스럽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벌채되고 자연이 훼손 되었는가! 거기다 후손들은 효도한답시고 산소 앞에 비석이니, 표석이니 하면서 많은 돈을 들여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 이미 자연으로 돌아간 고인 앞에 돌로 조형물을 만들어 장식한다는 발상도 시대에 맞지 않는다. 주위에선 벌초가 힘드니 가족 납골 묘지를 만들어야 한다고들 한다. 한 친구는 이미 자신이 들어앉을 납골묘가 조성 됐으니 걱정 없다고 자랑이다. 이것 역시 50보 100보라는 생각이다. 푸른 자연 속에 대리석으로 만든 납골묘 또한 자연 파괴의 주범이 아니던가! 차라리 무덤은 세월이 지나면 자연 속에 묻혀가겠지만 돌로 만든 조형물은 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몇 천 년이 흘러도 돌이 깎여 흙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각 나라마다 다른 장묘 문화가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의 장묘문화가 가장 번거로운 것 같다. 묘역을 많이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풍수지리에 맞추다 보니 명당자리는 보름달 같은 봉분들이 차지하고 있다. 아름다운 산천을 굽어보며 사자(死者)가 기세등등하게 앉아서 산자를 호령하는 형세다. 제사야 개인적인 문제지만 장묘는 자연 파괴의 주범이 되니 심각한 사회문제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머지않은 날 무덤 때문에 더욱 비좁은 땅에서 답답하게 살게 될 것이다.
이제 나도 그 곳으로 갈 날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내가 떠난 뒤의 그 자리를 생각하게 된다. 돌아보면 뭐 하나 내 놓을 게 없다. 존경받기는 턱 없이 부족하고 기릴 것도 우러를 것도 없다. 이런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누울 자리가 어디 있겠나! 나라 위해, 이웃 위해 나선 일도 없다. 오로지 생각나는 일은 자연을 훼손 한 것 밖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많은 쓰레기를 생각 없이 버려 자연을 훼손했고, 세재를 마구 풀어 설거지, 빨래, 목욕 등으로 물을 소홀히 했으니 물의 오염에 한 몫 한 셈이다. 내 살아온 날들이 자연에 부끄러운 일들만 별처럼 총총 떠 있다. 그러니 내가 자연을 차지하고 눕기에는 자연에게 너무 미안하고 면목이 없다.
내가 이런 주장을 하면 반론을 펴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후손들이 생각날 때 찾을 곳이 있어야 되지 않겠나.' 그래도 양반 집안인데 그렇게 격식을 갖추지 않고서야 체면이 서겠나. 자식 된 도리로 그럴 수는 없지.'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떠난 뒤 생각나고 또 때로는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산으로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꼭 만나는 장소가 산 속의 무덤이거나 납골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걸었던 길, 내가 생활했던 곳곳에 내가 있을 것이다. 한 줌 재로 자연에 날려 보냈으니 해, 달, 별, 바람, 구름, 비, 불타는 저녁놀에도 다 있을 것이다.
봄이면 화사한 봄꽃의 웃음 속에 있을 것이고, 여름엔 짙푸른 녹음 속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로 남아있을 것이다. 한 줄기 소나기에도, 가을 날 솔바람 따라 붉게 물든 단풍 속에도, 웃음으로 남아있으리라. 또 겨울날엔 순 백의 눈으로 내려 대지를 덮을 것이다
때로는 나와 깊은 대화를 하고 싶은 자가 있다면 내 글을 만나 보면 될 것이다. 어쭙잖은 글일지라도 그건 바로 나의 생각들이기에 바로 나다. 행간에서 나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세상에서 폐만 끼치고 살아왔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열심히 살았으니 좋은 이미지로 남았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본다.
남은 생에서 붙들고 싶은 희망 하나가 있다. 이왕 수필쓰기로 나섰으니 주옥같은 수필 한 편을 남기고 싶다. 내 글이 뭇 사람들의 가슴에 울림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 큰 꿈인가!
어느새 또 아침 해가 밝았다. 오늘도 내일을 위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그 피안의 세계로 가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내가 후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내가 피날레를 장식하는 날엔 내가 누울 그 자리에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어 달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