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안경

류귀숙 2015. 9. 24. 16:23

     안경

 오늘도 어김없이 두둥실 태양이 떠오른다. 태양 따라 또 하루가 왔으니 하루의 시간 속에서 쳇바퀴 돌 듯 뒹굴뒹굴 뒹굴며 살아간다.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시간들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도둑처럼 왔다가 도둑처럼 사라지기 때문에 그것들을 잡을 수는 더욱 없다. 그저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그 시간들은 모이고 모여서 세월이라는 집단을 만들었다. 이들은 뭉친 힘으로 많은 것들을 몰아간다. 빼앗고, 훔치고 탐나는 모든 것들을 쓸어간다. 기울어져가는 저녁노을 따라 유년은 이미 그들 속으로 사라져 갔다. 푸르던 청춘도 무대 뒤에서 기웃거리더니 어느새 가 버렸다. 이제는 곧 낙엽이 되어 떨어질 가을 나무 앞에 섰다. 오늘 이렇게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를 맞고 나면 곧이어 찬바람이 몰려오겠지. 곱디고운 단풍도 바람 따라 한 잎 두 잎 떨어져 세월 속에 묻힐 것이다. 지금 이 시간도 지난 시간과 함께  세월이라는 늪 속으로 떠나려 한다. 내 마음까지도 같이 가려는지 그 옆을 기웃거리고 있다.  

 세월이 모든 것을 앗아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한 해가 바뀔 때마다 나이를 한 살 씩 가져다 놓았다. 꼭 바람이 알곡은 실어가고 쭉정이들만 수북하게 몰아 놓은 기분이다. 세월은 구석구석에 쌓인 잡동사니나 먼지처럼 내 몸 여기저기에 찌꺼기들을 몰아다 놓았다. 이렇게 시간이 쭉정이와 함께 몰아다 놓은 나이가 벌써 60계단을 넘어서고 있다.

 누군가가 생년월일을 말하라면 입 속에서 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중국어 반에서도 자신을 소개하라면 생년은 빼 버리고 생일만 말한다. 누군가 재차 묻는다면 '비밀이라'고 중국어로 또박또박 말한다. 그래도 궁금하다는 사람이 있다면 30세 쯤 됐다고 말한다. 내 생각은 언제나 30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터무니없는 외모 때문에 '왁--'하고 웃는다. 일류 코미디언의 연기를 봤을 때의 웃음이다.

 생각해 보면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세월의 바람에 실려 나간 것이 젊음만은 아니었다. 칼날 같은 성정이 떠나가고 그 자리에 무딘 칼날처럼 두루뭉술한 성정이 자리 잡았다. 또 불 같이 급한 성미도 떠나가고  시냇물처럼 잔잔해졌다. 비록 몸놀림이 좀 둔해지긴 했지만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냇물에 깎여진 자갈돌처럼 몸과 마음이 둥글어져 보기에도 부담이 없다. 빠르고 날카로워서 좋을 때도 있지만 나는 느리고 무딘 것이 더 좋다. 신중하고 모나지 않으니 부딪칠 게 없어 찡그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모난 칼로 상대를 찌르고 번개 같이 빠른 동작으로 타인을 추월했다. 이때마다 서로가 상대에게 상처를 입혔던 일들이 생각난다.

 나이 들면서 가장 먼저 내 곁으로 달려 온 게 안경이다. 그러니까 시력이 가장 먼저 내 곁을 떠난 셈이다. 시력이 좋다고 안경 낀 친구 앞에서 우쭐대곤 했는데, 이제 내 눈 앞에도 흐릿한 안개가 가득하다. 안경 너머의 흐릿한 세상을 당겨 보려고 안경 도수로 조절해 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희미한 가로등이다.

 어린 시절 돋보기안경 코에 걸치고 신문 보는 노인이 그렇게도 추하게 보였다. 그 모습이 생각나서 돋보기를 끼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써 보았지만 노안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돋보기가 아니어도 흐린 세상을 밝게 볼 수 있는 안경이 생겨났다. 누진 다초점 안경을 끼면 코에 안경을 걸지 않아도 된다. 과학이 발달된 이 시점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누진 다초점 안경을 구입했다. 안경테는 빨간색으로 멋진 디자인까지 합해지니 아주 멋쟁이 안경이 됐다. 밖으로 봐서는 멋 내기 안경처럼 보인다. 거기다 렌즈에는 연 하늘색을 입혀 한층 멋스러움을 더했다.

 누진다초점 렌즈를 붉은 안경테에 감추고 새빨간 T셔츠에 파란색 바지를 입고 거울을 본다. 그런대로 봐 줄만하다. 눈가의 주름도  안경 속으로 들어가 잘 보이지 않으니 훨씬 젊어 보인다. 물론 빼앗긴 시력 때문에 적당히 감춰진 어스름이라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적당히 착각하고 행복을 얻는다면 이 또한 좋은 일 아닌가! 문제는 아침저녁으로 벗어 둔 안경을 찾느라 온 집안을 헤맨다는 것이다. 간밤에 벗어 둔 안경 찾느라 아침 시간을 다 보낸다. 벗어서 어느 자리에 둘 때는 못 찾을 거라는 생각을 안 하게 된다. 예전의 기억을 믿기 때문이다. 이 기억이란 놈도 살금살금 세월에 업혀 가고 나니, 뭘 찾는데 드는 시간이 만만찮다.

 언젠가 중국어 공부한다고 두툼한 책을 가방에 넣고 나의 보조자 안경도 함께 넣었다. 공부시간 내내 나를 도와 공부에 임했는데 돌아와 보니 그게 없었다. 부리나케 내가 머물렀던 자리를 돌며 찾아 나섰다. 미아가 된 안경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공부했던 도서관에도 없었고,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에게 전화해도 없었다. 

 임시낭패다. 문자를 보내려고 해도 희미해서 전화번호의 3자와 8자 9자의 구분이 분명치 않다. 안경 벗고 노안으로 살아보기 체험이라도 시키는 것인가? 어찌 기억력까지 안경 따라 가 버렸나!

 자존심이 딱 상했다. 또 귀한 친구 같은 소장품을 잃게 돼서 아까웠다. 그립기까지 했다. 눈에 삼삼 그려지는 내 안경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다시 안경 가게를 찾아 안경을 사야하는데 발이 안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오늘하루 나의 행적을 점검했다. 도서관, 은행, 우체국, 친구 집을 다녀왔다. 도서관엔 이미 없는 게 확인 됐고 친구에게는 전화로 물어봤다. 두 곳 모두 안경의 부재를 알려 왔다. 우체국과 은행은 직접 가 보기로 했다. 혹시나 하고 우체국에 먼저 갔더니 그 정다운 안경이 거기 있지 않은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안경도 나와 헤어지기 싫었던 모양이다. 진열대 위에서 당당히 버티고 앉은 안경을 집어 들고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도 머지않은 날 내 곁을 떠나겠지.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떠나는 날 그의 공로를 치하하는 공로상이라도 주고 싶다. 나를 도와 열심히 공부했고 또 글을 쓰는 수필가로 만들었다. 일상에서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나의 눈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공로가 어디 있겠나.

 좀 더 도수 높은 안경으로 바꿔 볼까? 아님 아예 노안 수술이라도 해 버릴까? 지금까지의 고마왔던 마음도 서서히 시간 속으로 가려는가? 안경에 대한 의리까지도 데려가는 것은 아닐까? 도리질을 하며 다시 마음을 잡는다. 흐려지는 안경을 닦으며 오늘도 공부할 때 도와달라고 부탁하며 고이 접어 안경통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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