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 지나면
'5년만 눈 질끈 감고 지내다 보면 한 숨 돌릴 거다.' 이렇게 생각하며 5년의 세월을 소중한 희망으로 품고 한 발짝씩 조심해서 걸었다. 가슴 속에 쌓인 먹구름이 실 안개로 바뀌는 그날을 기다린 시간들이 시루떡처럼 쌓여갔다.
5년이라는 숫자를 누가 내 머리 속에 심어 두었는지는 몰라도 그 숫자가 내 머리 속에 붙박이로 자리하고 있다. 짐작컨데 의사를 비롯한 주위 많은 사람들이 암암리에 5년이라는 숫자에 주문을 걸어 놓은 것일 게다.
중증 암환자들이 5년 동안 재발하지 않고 무사히 넘기면 병원으로부터 완치 판정을 받는다. 그러니 암 환자에게는 넘어야할 태산이다. 그렇담, 5년이라는 이 골치 덩어리 세월을 어떻게 한담?
멍석에다 둘둘 말아서 헛간에다 처박아 버릴까? 아님 보자기에 싸서 보이지 않는 등 뒤로 던져버릴까? 이래저래 이 골치 덩이와 싸운지가 꼭 5년이 됐다.
아니! 그동안 가는 세월을 막아 보려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데…. 그 세월 속에서 소중한 한 덩이를 떼 내려했다니 이 무슨 짓이람!
저만치 달아나려는 세월을 잡아 보려고 헛손질을 한 게 얼마던가? 떠나가는 세월에 업혀가는 청춘을 보며 종 주먹을 날린 세월이 또 얼마던가? 그때마다 거울 속에는 나를 닮은 늙은이가 증명사진처럼 들어앉아 허망하게 미소짓고 있었지.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 따라 잡고 싶은 세월도 있고, 보내고 싶은 세월도 있나 보다. 그러나 매정한 세월은 인간의 사정 따위는 콧등으로 받아 넘긴다. 도리어 인간에게 가르치고 있다. '세월은 잡을 수도 쫓아낼 수도 없으니 묵묵히 앞만 보고 가라.'고 한다.
5년 전 그날도 무더위는 막다른 골목에서 으르렁댔다. 태양은 사자의 포효처럼 불가마의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날, 몇 년을 벼르고 벼르다 겨우 병원을 찾았다. 그것도 내가 앞장서서 고삐로 끌고 등을 떠 밀어 병원 문을 열었다. 남편은 무슨 선심이나 쓰는듯한 표정으로 신문만 뒤적이더니, 그것도 시답잖은 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거리고 있었다. 이때는 보호자의 자격을 얻은 내가 나서야한다.
접수를 하고 대장 내시경 검사용 약을 받아 오면서도 물 먹일 일이 걱정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물먹기가 싫어 지금까지 검사를 미뤘던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어르고 달래서 겨우 다량의 물과 약을 남편의 대장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래도 물을 먹였으니 대장이 비워질 것이고, 검사 결과는 보나마나 별일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검사를 마치고 의사의 부름을 받고서야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속히 큰 병원으로 가세요." 큰 병원에서는 "암 센터에 접수부터 하고 오세요."
다음 순서는 검사 일정을 받고 수술 날짜를 잡는 일이다. 이제 남편은 신분이 바꿨다. 대장 암 환자라는 이름과 함께 암호 같은 고유번호도 받았다. 이건 청천벽력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그때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입 모아 하는 말이 5년을 잘 버티라고 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이건 오진이어야 한다. 아무래도 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때 수술 담당 교수님이 다시 대장 검사를 하자고 했다. 보호자도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남편의 대장이 모니터 가득 펼쳐져 있었다. 구절양장 같은 대장 속에 구슬처럼 조롱조롱 들어박힌 용종들이 반들거리며 비웃는 듯했다. 그 중 암이라는 장군 급 용종은 나를 회초리로 내리치려는 듯 검붉게 충혈 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동안 가족의 건강을 담당한 자로써 실책을 인정하고 뒷수습을 책임져야 했다. 이제는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니 맞서서 싸우고 견디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고통의 세월도 어김없이 지나가 5년이 흘렀다. 오늘이 바로 5년째 되는 날이다.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의사의 판정을 받으러 간다. 간단한 검사를 하고는 심판관 앞에 앉았다. "검사 결과 이상이 없습니다. 이제 중증 환자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래도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지속적으로 건강에 신경을 쓰십시오."
휴∼ 심호흡을 하고는 5년 전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먼저 기념으로 병원 식당에서 된장찌개 백반을 시켜놓고 그 세월을 더듬어 감사를 끄집어낸다. 왜래 접수창구에서 북적대는 사람들 속에는 그때 허둥대던 내가 보인다. 응급실에서도 가슴 조이며 하루 밤을 보낸 일이 있었지.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일들이 오늘 같이 생생하다. 복도를 거쳐 우리가 입원했던 4층으로 걸어가는데 밥 차가 앞을 막는다. 남편은 그때 밥 차만 보면 구역질을 했었지…. 병원 밥을 거부하는 남편을 먹이려 시장에 가서 수제비도 사 먹이고, 특별한 음식을 먹이느라 고생했던 일이 생생히 떠오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는데 환자복을 입고 약병과 약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가는 환자를 만났다. 그때 남편의 모습이 생각난다. 남편은 옷걸이 같이 생긴 동그란 약병 걸이에 7∼8개의 약주머니를 달고 다녔다. 수술 직후엔 피 주머니 소변 주머니까지 달았으니 엄청나다. 그때 한 젊은이가 "어르신 참 많이도 달았네요." 하기에 나도 모르게 '쿡'하고 웃었다. 그 시간에 웬 웃음이라니! 남편의 참담한 표정을 보고는 죄인처럼 웃음을 감췄다. 그때 일을 떠 올리며 오늘은 마음껏 웃어젖혔다. 시커먼 항암치료약을 달고 복도를 오가는 환자를 만날 때는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5년이라는 숨 막히던 시간들도 지니고 보니 추억이었다. 추억의 시간들은 모두가 아쉬움이고 그리움이다. 오늘의 현실이 괴롭더라도 5년만 넘겨보자는 각오로 살다보면 살아지는 게 인생 아닌가!
지나고 보니 고통도 내게는 삶의 지혜를 주는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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