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병마용 허수아비의 노래

류귀숙 2016. 6. 7. 22:48

           병마용 허수아비의 노래

  2천년의 시간들이 덕지덕지 내려앉은 갱 안이다. 금방이라도 우레 같은 소리를 지르며 창검을 휘두를 것 같다. 7천여 명의 병사들이 사열 직전의 군대처럼 질서 정연하다. 그 표정 그 몸짓이 엄숙하기 까지 하다.

서쪽을 향해 서서 호시탐탐 주군을 노리는 자들을 주시하고 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대오를 정비하고 주군이 묻힌 여산 능을 감시하고 있다. 북이 둥 둥 울리면 행군 나팔 소리에 맞춰 '와∼'하고 함성을 지를 것 같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라 꽤 더운 날씨인데도 오싹 전율이 일어난다.

 갱 속의 전차가 요란한 바퀴소리를 내며 굴러가고, 군마들이 겅중겅중 뛰어나갈 것 같다.

 어느 부대의 연병장 같은 지하 갱이 세군데나 있다. 모두 합치면 아마 사단 병력은 될 것 같다. 이 많은 군사들이 지하 갱에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자신의 임무 수행 명령만 기다렸을 것이다. 그 세월은 벌써 2천년을 훌쩍 뛰어넘었다. 

 주군은 어디 가고 그를 지킬 병사들만 남았는가? 이들은 주군의 무덤이 무참히 도굴 당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진시황도 어쩌지 못하는 일은 바로 자연의 섭리 아니겠는가! 그의 시신은 이미 산화되었고 그 영혼은 구천을 떠돌고 있겠지. 이제는 깨달았을 거다. 인생무상을….

 2천년의 역사를 되돌려 당시를 상상해 본다.

 진시황! 그는 최초로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권력과 부를 한 손에 거머쥐게 됐다. 그는 절대 권력을 뛰어 넘어 신이 되고자 했다. 그러니 늙지 않고 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아니겠는가? 그는 불로장생약을 찾아 천하를 헤매고 다녔다. 또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만리장성으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그의 절대 권력은 아방궁을 짓고,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향락에 빠지게 됐다.

 백성 위에 군림하며 권력과 부를 가슴 가득 품고 있는 그가 죽기 싫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불로불사에 대한 염원은 지나칠 정도로 넘쳤다. 여기에 도교 연단술사의 꾐에 빠져 단약을 복용하게 된 것이 오히려 단명 하는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이 약 때문에 수은에 중독됐다는 설도 있다. 이렇게 죽기 싫어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고자 했던 그는 결국 자연에 굴복 당했다.

 50세의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그는 태어나면 죽는다는 기정 사실을 외면하고 천년만년 살 것이라고  후계자도 정하지 않았다.

 그렇담 이 병마용들은 무엇을 뜻하는가? 불사약과 대비를 이루는 이 허수아비들은 왕의 사후에 임무를 수행할 병사들 아닌가?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이승과 저승을 마음대로 넘나들고 싶었나? 아님 살고자 하는 욕구 뒤에 죽음의 공포를 숨기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가 놓지 않으려 애쓰던 권력도 후손에게 이어지지 못했다.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순행 중 최후를 맞게 됐다. 죽음 직전에 장남으로 후계자를 삼겠다고 말했으나 측근은 배신하고 만다.  만만한 차남으로 후계자를 세워 놓고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했다.

 결국은 천하통일 15년 만에 진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진시황과 그를 지키던 병사들도 모두 세월 속에 묻히게 됐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는가! 엄청난 노역과 세금, 혹독한 법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엉망이 됐다.

 백성들은 기다렸다. 평화의 그날을…. 오랜 전란이 그치고 통일의 그날이 오면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며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 희망했다. 그러나 그날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아방궁, 만리장성, 병마용 갱, 여산

 능 등의 공사에 동원됐고, 도로건설과 변방 수비에 동원됐다. 한 집에 한 명꼴은 공사에 동원됐으니 그들의 고충이 오죽하겠나?

 근엄한 모습으로 도열(堵列)한 군사들에게서 백성들의 진한 눈물이 보인다. 이 갱 속에 갇혀 2천년을 지낸

 도용(陶俑)은 실로 놀라운 모습이다. 실지 사람 못지않은 정교한 솜씨가 놀랄 만하다. 그때의 도공 기술에 2천년의 시간을 지금에 겹쳐 놓는다 해도 손색이 없다. 도용들의 표정 하나하나 복장 하나하나 모두가 훌륭한 예술품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남아서 그때 일을 전하고자 한 것인가! 돌아서는 데 도용들의 허허로운 노래 소리가 뒷목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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