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 시구가 가슴에 딱 와 닿는다.
하얀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3월의 끝자락에 와서 그 친구 결국 먼 길을 떠났다.
겨우내 얼음장 같은 병마와 사투를 벌일 때도 새 봄에는 벌떡 일어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친구 그 약속을 차마 떨치고 떠나버렸다.
오늘 화창한 봄날 그 친구가 남기고 간 따뜻했던 손길을 가슴에 묻고 꽃길을 걷는다. 낙화되어 떨어진 꽃잎 위에 생명체에 주어진 유한한 시간이 겹쳐있다.
지금 내 마음은 春来不似春 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봄은 왔으나 마음엔 아직도 두꺼운 겨울옷을 벗어내지 못했다. 머리 속에는 그 친구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어른거린다. 깡마른 몸으로 고통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던 모습도 스르르 사라지고, 화사하게 웃고 있는 영전 사진이 나타난다.
등산복에 빨간 등산모를 쓴 그 모습이 싱그럽기까지 하다. 그 옷과 그 모자를 고를 땐 여행의 희망에 들떠 있었다. 내가 빨간 모자를 골라줬을 때 '너무 야하지 않아'하면서 웃던 얼굴이 복사꽃처럼 예뻤다.
우리 넷이서 자유여행 한 번 가 보자고 제의했을 때도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친구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 중국 서안으로 자유여행을 떠났고, 또 성공했다.
그때 중국 거리를 성한 사람 못지않게 누비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가졌다. 이 친구는 몸속에 들어온 암 친구와 당당히 맞서서 결국엔 이겨낼 거라고 믿었다.
어느 봄 날 이른 아침에 카톡에 올린 친구 남편의 글은 이 친구가 우리의 희망을 저버렸다고 했다.
지난 봄 그 여행이 마지막이었구나!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의 벽을 결국 넘어서지 못했구나!
오늘 스마트 폰 카톡 난을 들춰보니 그 친구 화사하게 웃고 있다. 카스토리에는 함께 했던 여행 사진들이 가득 들어있다.
봄볕이 좋으니 놀러가자고 카톡 한 번 날려볼까? 아차! 아니지! 이젠 숨김 친구 정도로 대우해야 되지 않겠나? 결국엔 이도 저도 못하고 그대로 두었다. 그가 간 곳이 어딘지는 몰라도 이렇게 발달한 세상인데 언젠가는 연락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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