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

폭력은 폭력은 낳고 (영화 '테러리스트')

류귀숙 2011. 7. 31. 15:11

*1996년 5월 7일 상영 :테러리스트

 

              <폭력은 폭력은 낳고>

인간의 본성은 善일까?  惡일까? 옛 부터 성인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어 온 인간의 본성을 "테러리스트'라는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평소 '성선설'쪽으로 더 많은 지지를 보냈는데  이 영화를 보고는 그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됐다. 너무나 두터운 악의 껍질 속에 과연 善이 숨어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테러리스트'라는 무시무시한 제목과 같이 영화 전체가 폭력 일색이다. 폭력이 폭력을 낳고 악이 악을 낳는 현장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장면이었다.

장래가 촉망되는 어린 형제 오사현, 오수현은 훌륭한 경찰이 되려는 꿈을 안고 상경했다. 아버지가 생시에 가르친 정직, 성실을  교훈 삼아 이 사회를 지키는 경찰이 되고자 세상에 뛰어 들었다.

두 형제 모두 경찰 대학을 나왔으며  형 오사현은 우수 경찰이란 평판이 나 있었고  경감의 지위에 올랐다.

동생 수현도 경찰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해 형을 능가하는 경찰이 되겠다고 다짐 했다.

그러나 동생 수현이 첫 근무 중 피해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보니  불량배들이 한 선량한 사업가를 괴롭히고 있었다. 의협심 강한 그는 그들에게 과감히 맞섰다. 아무리 무술을 잘 하고 용감하다고 하나  상대의 숫자가 워낙 많아 위기에 몰리자 총을 쏘아 상대 한명을 살해하게 됐다. 그 일을 계기로 청운의 꿈은 조각나고 과잉 진압이라는 판결과 함께 3년 징역과 자격 정지의 사슬에 얽혀 폭력의 주인공 테러리스트가 됐다.

수현이 3년형을 마치고 출감했을 때 그를 반겨준 사람은 친구 상철과 형 사현 뿐이었다.

수현은 형을 의지하면 형에게 부담만 줄 뿐이라며 친구 상철과 생활하다 불량배를 만나게 됐고 또 주먹질이 시작됐다. 그로 인해 보복과 쫓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치고 피를 흘리는 장면을 볼 때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고, 비참한 장면이 너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빗나간 동생을 바로 잡고자 무진 애를 쓰는 형을 수현은 자신의 자존심 즉 형에게 피해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형을 피하고 악의 무리들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놀랍게도 그 악한 불량배들을 조정하는 배후에는 재계의 거물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중소기업들을 합병해 대 기업으로 급성장 시켰다. 악당들을 동원해 부당한 방법으로 재력과 권력을 동시에 거머쥔 임태호 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양심의 가책도 없다. 오로지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 황금만능주의 사상의 대가이다.

그로 인해 무너진 기업과 그에 따른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여기에 강한 직업의식을 가진 황기자는 여성이면서 남성 못지않게 과감한 데가 있었다.  미리 사직서를 제출해 놓고 악의 두목 임태호 회장의 비행을 폭로하다 그들의 일당에게 잡혀 욕을 보게 됐다.

오사현 역시 임태호를 폭력 조직의 우두머리로 간주하고 수사의 초점을 맞췄으나 뒤가 두려워 몸을 사리는 상관과 동료들 때문에 홀로 서기를 해야만 했다.

난 여기서 즉 소수의 선인들이 악의 무리를 진압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스스로 악의 진창에 빠져 들든지 아니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

오수현 역시 선의 본성을 가졌고  악의 무리를 진압하려는 정의의 사나이였으나 악인들과의 접촉이 잦고 보니 악의 진창에서 허우적거리게 됐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이다.  이게 옳은 일이 아닌 줄 알지만 폭력은 폭력으로 갚아야 된다고 했다.

둘도 없는 친구 상철도 악당들의 손아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결국 그 역시 죽고 죽이는 난투극에서 생을 마감하게 됐다.

동생을 찾아나선 형 사현이 피투성이가 된 동생의 모습을 보고 임태호를 살해함으로 악의 수렁으로 한 발짝 들어서게 됐다.

폭력으로 인해 젊은 두 형제는 꿈과 희망은 물론 생명까지 잃게 됐다.

이 영화의 대부분이 잔인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인간이 인간성을 상실하면 동물보다 더 못하다는 생각과 함께 인간의 본성은 원래부터 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인간을 일러 만물의 영장이라 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명석한 두뇌와 다른 동물들이 가질 수 없는 언어 능력을 부여 받았으니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테러리스트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하게 끝나는 가를 보여준 이 영화가 무분별한 폭력 확산에 제동을 걸어주기를 바란다.

요즈음 청소년들의 무차별적인 폭력은 황금만능주의에서 온 인간 상실의 현상임을 기성세대들이 우려하고 있다.

어린 여중생까지도 폭력을 휘두르는 정도니  폭력이 우리 청년들 사이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인간의 지혜가 발달하고 문화가 발달하면 할수록 원시적 방법인 폭력이 줄어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기성을 부리고 있는 건 어쩐 일인가?

이 시점에서 '테러리스트'라는 폭력을 주제로 한 영화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그러나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 폭력 문제 까지도 접목시켜 더욱 심도 있게 다루었으면 한다. 아울러 폭력을 순화시킬 수 있는 방법 까지도 제시 되었으면 더욱 더 훌륭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마지막 장면인 형이 죽어가는 동생을 안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다른 형제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막혀있는 기분이다.

동생의 죽음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형에게 다가오고 있으니......

선이 악에 의해 또 다른 악을 낳고 있는 이 사회를 정화시킬 방법은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