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빈 둥지

류귀숙 2013. 6. 5. 07:42

     < 빈 둥지>

 세월의 무게에 짓눌린 두 어깨는 기우뚱 기우뚱 균형이 맞지 않는다.

혼자서는 몸을 가눌 수 없어 손자 타던 유모차에 매달려 간다.

 머리는 백발이요, 얼굴은 온통 주름투성이라 웃는지 화났는지 가늠할 수 없는 할미가 간다.

 빈 유모차 밀고 가는 할미의 눈빛 속엔 까르르 웃음 짓는 손자 얼굴 가득하다.

 석양빛을 가슴으로 받으며 유모차에 의지해 걷고 있는 저 모습은 우리 여인들의 역사며, 미래의 내 자화상이다.

 어느 종갓집 며느리였던 할머니가 하셨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어느 날 종손이 할머니께 "할머니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오셨어요?" 라고 여쭸더니 할머니의 대답이 "앞에피 말 몬한다. 자죽마다 눈물이다." (앞앞이 말 못한다 자국마다 눈물이다.) 라고 대답하셨단다.

 이 한마디는 전 전(戰 前)세대 며느리들의 삶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유모차 밀고 가는 저 할머니도 지난 세월 돌아보며 흘린 눈물 헤아리고 계실까?  할 말이 하도 많아 막혀 버린 말문 탓인가? 말없이 걸어가는 할머니를 보면서 우리들의 할머니 어머니들의 젊었던 시절을 헤아려 본다.

 '인생살이 산 넘어 산'이라 했던가. 우리네 조상들의 고달픈 삶 중에서 여인들의 삶은 고난의 극치라고나 할까.

 그 시대의 여인들이 동짓달 긴긴 밤을 눈물로 지새웠던 때를 상상해 본다. 희미한 호롱 불 아래서 떨어진 옷 꿰매며 한숨짓던 할머니, 어머니 모습이그림자 되어 떠오른다.

 넘어야할 고개들이 또 태산준령이 앞을 막아섰고 모진 세월은 시시때때로 치마꼬리를 붙잡았다.

 태어나면서 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딸의 삶을 시작으로 시집가서는 여인의 삶으로 굽이굽이 고개를 넘었다. 모진 시집살이 고개를 넘을 땐 자국자국 눈물 흘리며 베갯잇을 적셨고,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보릿고개도 넘어야 했다.

 승냥이로 변한 일제의 서슬은 숨죽여 피해 갔고, 6.25의 모진 바람도 온몸으로 막아냈다.

 한 숨 돌리고 평탄 길 내려와서는 자식들이 맡긴 손자들로 허리가 휘어졌다.

 이제는 세월 따라 모두 떠나고 빈 둥지만이 그를 지킨다. 아련한 손자 얼굴 바람으로 다가오고, 빈 둥지엔 적막만이 그를 반긴다.

 요즈음 독거노인 가구가 늘어나 혼자서 임종을 맞는 노인들의 이야기는 이미 보편화됐다. 얼마 전 돌아가신지 몇 년 후에 전기 검침원에 의해 주검이 발견 된 예는 충격을 넘어 경악 할 수준이다.

 빈 둥지에서 쓸쓸히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의 삶이 바로 내 부모님의 삶이고, 내 이웃 노인들의  현실임을 생각할 때 딱 15년 전에 빈 둥지 생을 마감한 어머니 생각이 아련하다.

 불편한 다리 끌며 학처럼 길게 늘어뜨린 목으로 멍하니 대문 쪽 바라보던 그 모습 눈에 아른거린다.

행여나 어느 자식이 불쑥 나타나 줄까. 그리는 그 마음은 빈 둥지를 채우고 생에 지친 자식들은 떠나온 둥지를 잊어만 갔다.

 1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자식들은 뭐에 그리 바쁜지 빈 둥지의 슬픔은 아랑곳없다.

언젠가 한번 고향집에 갔을 때 "죽기 전에 비행기 한번 타 보고 싶다."고 하신 말씀을  귓가로 흘려버렸다.

 '걸음도 못 걷는 분이 비행기를 어떻게 타려나.' 라는 생각에 그 꿈을 휴지뭉치처럼 둘둘 말아서 휴지통에 던져 버렸다.

요즈음 빈번하게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 갈 때는, 어머니 생각으로 가슴이 아린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 꿈을 이뤄 드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귓가로 흘려버린 게 후회가 된다. '자식이 효도하려 해도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은 잘 알고 있었으나 그 때는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내 아이 기르느라 바쁘고 생활에 여유가 없어서'라는 핑계로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지금도 비행기 타고 싶다던 그 말씀 귀에 쟁쟁 울린다. 불편한 다리 끌며 우리 집에 오셨을 때, 힘들고 불편한 생각에 반기지 않았던 죄과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때의 어머니 모습과 많이도 닮았다. 그 모습이 내 모습으로 다가오니 엄마의 그 심정 조금은 알 것 같다.

 나 자신도 언젠가는 빈 둥지 노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갑자기 두려움이 앞선다.

 내 부모를 돌보지 못한 아쉬움을 이웃 노인에게라도 베풀어 용서를 빌까 한다.

공원을 지나가다 벤치에 홀로 앉아 계시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꼭 내 어머니 같이 생기셨다. 손을 잡으며 뭘 하고 계시느냐고? 여쭤 본다.

 주름 속 웃는 얼굴이 애기 같이 귀엽다. 그저 그렇게 앉아서 그냥 놀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내 이웃에 조금만 더 관심을 보인다면 노인들이 훨씬 더 행복한 생을 마감하지 않을까. 손이라도 한번 잡아 드릴 수 있는 여유가 노인에게는 위로가 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빈 둥지에 햇살이 비치고 아이들의 웃음으로 채워지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자 바보  (0) 2013.06.13
화려한 외출  (0) 2013.06.08
중국에서 날아온 파랑새  (0) 2013.05.31
이 장미의 계절에  (0) 2013.05.27
늦깎이  (0) 2013.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