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손자 바보

류귀숙 2013. 6. 13. 19:29

        손자 바보

 길을 가다 아장아장 걷는 앙증스런 아기를 만나면 귀여운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한다.

 엘리베이터 에서도, T V 화면에서도, 어린아이의 존재는 그 어떤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없는, 천사 같다고나 할까?  한 마디로 어린이 예찬을 하기 엔 언어의 부족을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부터 모든 아이가 예쁘게 느껴졌다. 내 아이 기를 때는 일에 지쳐서 귀여운 줄 몰랐다.

 내 아이가 장성해서 아이를 낳았으니, 이름 하여 두벌 자식이 된 손자는 내 아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를 할머니로 만들어 준 얄미운 아이인데도 그저 바라만 봐도 귀엽다. 가끔 까르르 웃으면 모든 시름이 사라진다.

손가락 빨고 , 옹알이 하고, 귀여운 것이 재롱을 부릴 때면 천지 분간 못하는 바보가 된다. 이 바보는 블랙홀로 빠져 들어가 헤어나 지 못 하고 마냥 허우적거린다.

 예전부터 조부모가 애를 기르면 버릇이 없고 바른 교육을 시키지 못한다고 했다. 그때는 어른이 무식해서 교육을 잘 시키지 못하니 그랬을 것이라 치부해 버렸는데 내가 어른이 되니 그때 바보가 된 조부모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세월 따라 할머니 이름표를 달고 보니 뇌의 구조도 변했나 보다. 이성이니 판단력이니 하는 고상한 언어와는 상관없이 점점 손자 바보가 돼 가고 있다.

 비교적 경우 바르고 지적으로 존경할 만한 선배나 친구들조차도 진즉에 바보의 대열에 끼어들었다.

 착각이라는 병이 할머니들을 점점 바보로 만드는 모습을 살펴보면.

 첫째, 내 손자가 귀여우니 남도 귀여워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쉴 새 없이 자랑을 남발하고,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고, 또 동영상까지 전송 면서 남들이 듣든지 말든지 막무가내로 자랑 세례를 퍼 붓는다.

  "우리 아이 돌잔치 사진인데 한번 볼래? 눈이 크고 아주 잘 생겼어."라는 글과 함께 카톡으로 사진을 전송해 왔다.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손자 돌 잔치 영상이 담겨 있었다.

 둘째, 내 손자의 두뇌가 가장 명석하고 인물도 아주 잘 생겼다는 것이다.

  "금방 태어난 애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봐요." "우리 아이는 세살인데, 말하는 수준이 아주 높아요." "우리 아이는 다섯 살인데 한글은 물론 영어도 알아요." 라며 대단한 손자라고 자랑 또 자랑이다.

 셋째, 내 손자의 귀여움, 우수함을 지인들에게 알리면 감격해 할 것이라는 것이다.

  휴대폰 바탕화면은 자신만의 공간이니 그렇다 치고 카스토리에 들어와 손자 사진을 도배하고 심지어 스포츠 동우회 카페에도 손자 백일 사진, 돌 사진을 무차별로 올린다.

  더욱 웃기는 것은 카스토리나 카톡에 자신의 이미지 대신 손자 사진을 올린다는 것이다.  어린 아기가 내 친구 명단에 들어와 자리잡고 있으니, 내 친구는 아기가  가장 많은 셈이다.

 그래도 손자가 있는 사람은 덜하지만 40, 50대들은 더욱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 중에서 더 큰 착각이 또 있다.

 우리가 넘치도록 사랑을 퍼 붓는 손자의 입장은 알고 있는가? 그들은 할머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해 봤는가?

 할머니들은 손자들이 할머니를 반기고 안보면 보고 싶을 것이라 착각한다. 또  넘치는 손자 사랑에  감격하리라 기대한다. 그러니 손자에게는 자식과는 또 달리 무조건적으로  물질 세례를 퍼 붓는 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손자들이 조부모를 자기의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즈음 같은 핵가족 시대에는 할머니는 그저 선물 사다 주는 손님이고, 자신을 도와주는 도우미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도 할머니들이 바보의 늪으로 빠져가는 행진은 그칠 줄 모른다. 언제 쯤 그 늪에서 헤어 나올까? 아마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아야 끝이 나지 않을까?

 갱년기를 맞아 허전함과 허무가 찾아오는 시점에서 손자 바보가 되어 행복을 느낀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착각 속의 바보라 할지라도 내 손자 자랑 할 때는 한번쯤 상대의 불편한 심기를 헤아렸으면 좋겠다. 아님 한 턱 거하게 내고 마음껏 자랑하든지.

 자랑도 착각도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으면 좋겠다.

 마침 큰 손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옥구슬 구르는  그 목소리는 "할머니 방학하면 갈께요. 우리 같이 칼싸움 하고 놀아요."라고 말했다.

 이 전화를 받는 순간 내 감정은 이미 바보의 늪으로 빠져 가고 있었다. 마음이 바빠지고 뭘 어찌해야 좋을지 안절부절 못하고 허둥댔다. '뭘 해 먹일까? 무슨 장난감을 사 줄까? 용돈은 얼마를 줘야지? 옷도 한 두 벌 사 줘야겠지? 에라 가계부는 잊고 그저 쓰고 보자."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귀여운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하루하루가 더디게 가는 것 같다.

 이 바보라는 병은 단번에 치료할 수 없는 만성병인가 보다.

강한 의지로 밀어 보지만 손자의 목소리, 웃는 얼굴, 아니 우는 얼굴도 좋다. 손자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일이면,  또다시 바보의 늪으로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모두가 바보인 것을......

그래도 나만은 정신을 차리고 있다고 자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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