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을 품에 안고
거대 중국 대륙 밑에는 자는 듯 수줍은 듯 숨어 있는 토끼 한 마리가 있다.
하얀 털의 순하디 순한 토끼는 늘상 승냥이 떼에게 쫓기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걸핏하면 조공을 바치라는 중국 대륙의 억지에도 지혜롭게 피해갔다. 샘이 난 러시아도 한 몫 챙기려 길게 목 빼고 기웃거리는데, 섬나라 왜인들은 대놓고 분탕질이다.
애초에 조상들이 자리 잡기를 잘못 한 것 같다. 너무 큰 땅에 붙어 있으니, 작은 몸으로 폭풍을 피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섬에서 자란 막돼먹은 여우는 간 크게도 대륙에 탐을 내기 시작했다. 감히 학문과 문화, 종교 등을 전해 준 우리에게 대륙을 치겠으니 길을 비키란다. 그 더러운 발자국이 한반도에 난자하게 찍히던 날, 분노한 젊은이들이 의분의 팔을 걷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탐내는 이웃 나라들이 여름 날 파리 떼 몰리 듯 시도 때도 없이 달라붙었다.
이리 뜯기고 저리 차이는 와중에도 잡초처럼 용케도 살아남은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다. 우리 민족의 끈기와 부지런함이 민족을 일으켜 세운 힘이 아닌가 싶다.
이제 우리민족은 지구촌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장한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또 한반도에서 일으킨 봄바람은 한류열풍이란 기류를 타고 세계인들의 가슴을 흔들고 있다. 이미 한국은 토끼가 아닌 아시아의 호랑이로 거듭난 지 오래다.
이제 지구촌 젊은이들의 가슴에는 한국이라는 꿈이 심어지게 됐다. 가슴에 품은 꿈은 그들을 이 땅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최근 들어 외국인 유학생이 늘고, 한국인과 결혼해서 이룬 다문화 가정이 생겨난 것도 과거의 일이 돼 버렸다. 그 외에 여러 목적과 사연을 품고 많은 외국인들이 이 땅을 찾아오고 있다.
나는 그 중 중국에서 온 유학생을 수양딸로 삼아 가족이 되었는데, 그 딸이 러시아에서 유학 온 청년을 사귀게 됐단다.
구미 금오 공대에서 중국 딸은 경영학 석사 과정을 공부했고, 러시아 청년은 공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가 서로 마음이 통해서 결혼을 약속했단다.
이제 거대 대륙이 내 앞으로 다가온다. 중국 딸이 러시아 청년을 데리고 인사하러 온단다. 글로벌 시대라더니 내 앞에 중국과 러시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청소하고 음식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율이 일어난다. 그 앞에 서면 오금을 펴지 못했던 두려운 존재였었는데 이제 내 손아귀에 들어온다니 통쾌한 기분마저 든다.
공산주의 깃발을 잘못 흔들다 뒤쳐진 두 나라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약소국에서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나! 어깨가 올라가고 손에는 힘이 잡힌다.
'우리들은 과거의 너희들처럼 잘난 체 군림하지 않고 포근하게 품어 반기리라.' 주문처럼 웅얼거린다.
지극히 한국적인 음식을 준비하며 그들에게 한국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러시아 청년은 한국 가정을 처음 방문한다고 하니, 난 이들에게 홍보대사가 되어야겠다.
러시아 청년은 슬라브족 특유의 얼굴로 흰 피부에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예의 또한 깍듯하여 한국청년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처음엔 음식으로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고, 자연스럽게 과거의 역사와 3국의 관계에 대해 접근해 갔다.
1930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세계사의 흐름을 짚어 가며 러시아 왕국과 청나라 왕국에서 공산주의로 접어드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에 입힌 피해도 언급했다.
한국전쟁을 일으켜 한반도를 초토화 시킨 주법이 바로 러시아라고 말했다. 또 다 이긴 전쟁을 어렵게 만든 중공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 애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숙연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 침략자들은 과거 조상들의 치부는 가르치지 않은 것 같다. 유감인 것은 이 자리에 일본 청년까지 참석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잘 살게 된 것도 국민의 노력 덕분이라고 했더니, 중국 딸은 한국이 잘 살게 된 것은 미국이 도와 준 때문이라고 했다.
이 기회에 그들이 한국에 대해 잘 못 알고 있는 부분을 정정해 주었다.
마침 상영 중인 '국제시장'을 관람시키면 더욱더 생동감이 있을 것 같아, 영화 내용을 미리 가르치고 극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들은 지식수준이 높아 우리 민족이 고생하며 살아왔던 내용인데도 아주 감명 깊게 관람했다고 한다. 이 젊은이들도 글로벌한 사고를 가졌음이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집에 돌아온 두 사람과 또 다시 토론이 벌어졌다. 두 사람의 서툰 한국어는 내가 중국어로 보충하고, 막내딸이 영어로 러시아 청년과 대화를 하게 됐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가 공산주의를 했기 때문에 수준이 하향 조정 됐다고 분명히 말했다. 공산 이론이란 또 다른 착취를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도 붉은 깃발을 흔들고 있는 북한은 무뇌아들의 집단이 아닐까!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에 얽혀 그 감정으로만 세상을 볼 때는 이미 지났다. 그 과거가 거울이 되어 현명한 길로 나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할일이 아닌가. 이제 중국도 러시아도 일본까지도 품에 안고 다독여야 할 때다.
새마을 운동이니, 파독 광부니, 파월 장병이니, 하는 이름들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발판이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그 발판을 딛고 힘차게 도움닫기를 해야 할 것이다. 잘 사는 나라라야 힘이 있고, 힘이 있어야 그들을 품에 안을 수 있다.
안일함에서 벗어나 우리의 선배들이 뛰었던 그 뒷자락을 부단히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두 나라의 청년들에게 우리를 알리게 되어 뿌듯한 마음이다. 앞으로도 그들과 종종 만나서 우의를 다질 것이다.